지난 10월 초 나는 연변예술대학으로부터 특강과 독창회를 요청받았다. 안개를 가르는 비행기로 연길 국제공항에 내린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강의와 매스터클래스 일정이 시작되었다.
교수님들부터 맨 앞자리에서 진지하게 나의 강의에 열중하셨고,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몸을 앞으로 기울여 앉은 학생들의 또렷한 눈망울들도 인상적이었다. 예정 시간이 훨씬 넘었지만 자기 차례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성악 전공생들의 열성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화장실도 갈 새 없이 강의와 매스터클래스로 열을 올리고 나니 몸은 땅으로 내려앉는 것 같았고, 잠시 숨을 돌리려니 곧 독창회 무대에 설 시간이었다.
강행군으로 독창회와 강의 일정을 치룬 다음날 아침, 가곡 ‘선구자’의 무대인 용정을 향하여 서둘러 떠날 수 있도록 연길시 법무장이 우리 일행을 배려하였다. 항일 독립투사들의 근거지였던 비암산의 그 ‘일송정’은 일본인들의 학대로 결국 죽어서 베어져 버렸지만, 몇년전 뜻있는 동포가 그 자리에 다시 소나무를 심고 누각을 지어 옛 애국지사들의 뜻을 기리고 있다. 그 누각 아래 소나무숲 안개 사이로 유유히 굽이치는 한줄기 해란강을 내려다보니, 그 숲을 달리던 선구자들의 급한 말발굽 소리가 내 가슴에 부딪쳐 오는 듯하였다.
조선말기 식량난 때문에 용정까지 온 조선 유민들이 황무지를 개간하여 벼농사를 짓기 위해 처음 팠던 ‘용두레 우물’. 힘겹게 삶의 터전을 마련한 용정에 독립투사들이 모여들자 넉넉지 않은 농가 살림들을 쪼개어 독립군자금으로 보탰다는 이곳 동포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시려왔다.
용문교를 건너 용정중학교 안에 있는, 시인 윤동주가 다녔던 대성중학교 구관 건물 앞에서 서시 시비와 마주 섰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타국 땅에서 이 시를 읽으며 해방 몇달전 옥사하고 만 젊은 영혼 윤동주를 떠올리니, 모교 연세 교정에서 처음 이 시를 대하였을 때보다 몇 백배나 더 울컥해지는 마음에 주루룩 눈물이…! 뜨거운 나라 사랑을 굽히지 않던 이 시인의 삶이 편안한 일상 속에 살던 나를 돌아보게 하였다. 과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일송정과 해란강 그리고 용두레, 중국 대륙의 그 차가운 바람 속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싸우던 피 끓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 짧은 삶을 살았던 윤동주의 고통스런 마지막 날들!
‘선구자’를 노래하는 내 마음이 한층 뜨거워진다.
용정을 돌아보며 선구자를 찾고 있는 작사자 윤해영선생의 모습을 그려 보는데 조용히 떠오르는 ‘선구자’의 3절 가사. 용주사 저녁종이 비암산에 울릴때/ 사나이 굳은 마음 길이 새겨 두었네/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지금은 어느 곳에 거친 꿈이 깊었나
김양희
라디오서울 ‘김양희의 이브닝 클래식’ 진행.
sopyh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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