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킴, 내일 오후 12시부터 메트 오페라에서 르네 플레밍의 팬 사인회가 있데요!”
뉴욕까지 오페라를 보러간 친구의 문자 메시지이었다.
30여년 만에 다시 온 공연이라 이미 모든 공연이 매진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타이스’를 직접 보고 싶었던 친구는, 저녁마다 인터넷을 찾다 마침내 지난 크리스마스 전 주간에 ‘딱 한 장’ 나온 티켓을 입수하여 뉴욕행 비행기에 훌쩍 몸을 실었다.
“사인회를 가려면 아침 8시부터 줄을 서야 되는데, 그 시간을 맞추려면 아침 6시부터 서둘러야 해요. 과연 그 긴 시간 줄을 서서 사인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요?”라고 묻는 그 친구에게 난 “그 연주자에게 감동을 받았다면, 한나절을 할애하시고, 아니라면 차라리 뉴욕 시내관광을 즐기세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새벽부터 부지런을 떤 덕에 그녀는 제 일착으로 르네 플레밍의 사인을 받았지만, 아쉬움에 다시 줄의 맨 끝에 가 서서 두 번째 만남까지 하였단다.
뉴욕에서 돌아온 그 친구는 나의 이름을 쓰고 저자가 사인을 한 플레밍의 자서전과 함께 플레밍이랑 찍은 사진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나에게 주었다. 사려 깊은 친구에게 감동을 받고 보니, 지나간 내 뉴욕생활의 즐겁던 기억들도 다시 살아났다.
맨해턴 거리를 나설 때마다 나의 오관은 무척이나 바빴다. 피부에 상쾌하게 와 닿는 공기 속에, 보는 것, 듣는 것, 코를 간지럽히는 향기, 그리고 혀끝에서 녹아드는 음식마다 뉴욕의 멋이 짜릿하게 전해 왔다. 언제 어디로도 대중교통을 통해 쉽게 갈 수 있는 맨해턴은 블럭마다 다른 분위기인데, 다음 블럭에는 어떤 모습들이 나타날까 싶어 부지런히 눈길을 돌려 본다.
어떤 음식점? 쇼룸에 물건들은? 무슨 패션으로 차려입은 멋쟁이들이 내 앞을 지나갈까? 이 극장의 영화는? 이 콘서트홀의 연주자들은? 이 오페라단의 요번 시즌공연은 어떤 가수들이? 등등… 뉴욕의 매력은 빈부귀천을 무론하고 남녀노소 모두 이 도시가 쏟아내는 온갖 문화들을 즐기는 데 있다.
긴 겨울 끝자락에 잠깐 스치듯 오는 뉴욕의 봄이 너무 아름답다. 사람들의 차림새도 센트럴 팍의 봄꽃들처럼 피어난다. 따스한 봄 햇살 한 줄기라도 몸에 담아 보려고 길거리 카페의 테이블들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수다와 웃음 속에서, 그윽한 커피 내음과 차향기가 만발한다.
그 따스함도 잠깐! 맨해턴은 다시 쌀쌀한 냉기가 감돌다가 갑자기 숨 막히게 긴 여름이 되어 버린다. 이런 분위기를 흠뻑 즐기는 뉴요커들은 자기도 모르게 날씨와 함께 변덕스러워진다. 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그들은 마치 카멜레온 같다. 그래서인지 뉴요커들의 음악은 생동감이 아주 짱이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이 인공위성을 통해 미국 전역의 극장에서 공연을 중계해주는 덕분에, 뉴욕을 떠나온 나도 지난주 우리 동네 극장에서, 비행기로 날아가 직접 본 것보다 더 편안하게 ‘타이스’를 즐겼다.
역시 르네 플레밍의 노래와 연기는 내 친구가 새벽부터 줄을 서서 사인을 받을 만큼 큰 감동이었다.
라디오 서울 ‘김양희의 이브닝 클래식’ 진행
sopyh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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