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말 브루클린 다운타운의 한 소극장에서 상연된 연극 ‘크로싱’에서 배우 최미선씨는 10여개국에서 온 다민족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일인 다역의 아시안을 연기하는 최미선씨의 대사에는 이런 대목이 있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뉴욕,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젊은 연극인들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기대감으로 이곳에 왔지만 현실은 너무나 냉정하고 어려웠다. 단순히 영어가 부족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내가 다니던 대학의 한 교수는 노골적으로 ‘너는 안돼’라는 말을 제자에게 내뱉었다.”
작가나 연출가가 쓴 대사가 아니라 배우 최미선이 실제로 겪은 일을 대본에 삽입한 것이다. 뉴욕에서 예술가로서의 길을 찾고자 하는 이민자들은 대부분 어렵고 힘든 일을 겪는다. 밥 굶으며 고생했다는 말이 특별한 경험이 아니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2세도 1.5세도 아닌 한인이 뉴욕에서 배우의 목표를 추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어 고생한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난의 길을 내재하고 있다. 미술이나 음악, 무용 등과는 다르게 배우라는 직종은 재능, 외모, 신체조건, 연기력 등을 떠나 ‘기본적으로 말이 능숙하게 돼야 하는 것’이다.
최씨는 “맨하탄에 유일하게 여자 야간 캐쉬어를 고용해주는 델리에서 밤새 일을 하며 학비와 생활비를 벌었다”며 “생활이 힘들어 운적은 없지만 영어가 늘지 않아 운 적은 셀 수도 없다”고 회상했다. 물론 크로싱에서 최씨의 영어는 흠잡을 데 없이 매끈할 뿐 아니라 작은 체구에서 뿜어나오는 강한 ‘포스’와 존재감, 강한 눈빛으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처음엔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공부했던 최씨는 담당 교수의 냉정한 태도에 큰 상처를 받았지만 오히려 연극 명문인 사라 로렌스 칼리지에 진학해 MFA 학위를 받으며 전화위복했다. 졸업후 배우는 물론 댄서, 성우 등으로도 활동하며 극단 ‘콘크리트 템플 씨어터’, ‘빌리 목사와 스톱 쇼핑 가스펠 콰이어’ 등의 일원으로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에 활발하게 출연하고 있다. 또한 바쁜 스케줄을 쪼개 청소년 극단 메아리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최씨는 오는 2월 맨하탄에서 열리는 아미 레비 댄스단 공연, 3월부터 5월까지 ‘빌리 목사’단의 순회 공연에 참여하는 등 올해도 바쁜 일정이 예정되어 있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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