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 곳을 다녀가신 김남조 선생님과 함께 한 식사자리에서였다. 문인들을 유심히 보시던 선생님께서 K시인을 향해 “당신, 입술연지가 너무 화려해. 문인의 입술이 아니야” 하셨다. K시인의 대학 은사이기도 한 김남조 선생님의 말씀에 핫핑크색 고운 립스틱을 바르고 온 K시인을 비롯한 모두가 민망했었다. 문인다운 화장이나 치장이 있다며 노시인은 조근 조근 말씀하셨다. 돈이 많아도 문인은 명품이나 화려한 차림을 지양하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하고, 말씨나 행동도 늘 문인답게 하라고 하셨다.
글 쓰는 사람 치고 끼와 감성이 풍부하지 않은 이는 없다시며 그런 것을 함부로 내놓지 말고 품위를 지키며 사는 것이 문인이라고 조용히 훈계하셨다. 팔십 노인의 잔소리로 들리지 않았다. 같은 문인이기에 말씀하신다는 대가의 조언이 옷깃을 여미게 하였다. 제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셨으리라 생각하니 오히려 존경스러웠다.
그 일 이후 늘 마음에 품고 살았다. 본디 볼품없이 태어난 터에다 글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적어도 ‘문인의 품위’는 지키며 살아야겠다며 결심 아닌 결심을 한 셈이다. 같은 시대를 사는 동료 문인들에게도 엄격하나 따스했던 시인의 조언을 알려주리라 생각했다. 한국의 김남조 선생님 댁을 방문했던 분들이나 여행을 함께 다녀오신 문인들 사이에 김남조 선생님의 어록은 무궁무진하게 펼쳐진다. 모두 흥미롭고 새겨둘 만한 문인의 지침들이다.
‘자칭 문인’을 포함하여 ‘공증된 문인’까지 ‘문인’이 넘쳐난다. 한글을 깨치면 다 문인으로 불리고 싶어 한다는 부끄러운 조크가 있는 문인사회이다. 등단이라는 절차를 밟은 문인들조차 ‘문인’이라는 타이틀을 얻고 나면 그게 다인 줄 알고 글쓰기에 게으르다. 글을 안 쓰는 이를 문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문인’이라는 간판의 프리미엄만 누리려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운동선수가 쉬면 안 되듯 문인도 매일 매일 쓰기를 연마해야 한다. 그게 기본이다.
문학은 고독하고 외로워야 하거늘, 생각이 많고 할 말도 많은 문인들이 모인 단체는 요란하기만하다. 그 빈 수레의 한 축을 맡아 올해 재미수필가 협회의 회장이 되었다. 문인은 지금도 많은데 자꾸자꾸 늘어나 문인사태가 날 전망이다. 소설가 이외수 선생의 말을 빌면 그 많은 문인들이 문학에 있어서 효소의 역할을 할 지 바이러스의 역할을 할 지 근심스럽다고 하셨다.
내가 속한 단체만큼은 효소의 역할을 하도록 모두 정진하였으면 좋겠다. 샤프하고 지적인 문인이 되기 위해 ‘문인의 몸매’부터 찾는 일이 내겐 시급한 일이다. 겉도 속도 아름다운 문인, 문인다운 문인, 진짜 문인이 되어 보자.
이정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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