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부산국제사진전에 초대를 받고, 일정상 참석하지 못하는 회원들의 아쉬운 눈빛을 뒤로 한 채 큰 마음먹은 회원 8명이 귀국길에 올랐다.
20년만의 고국방문은 성공적인 전시회와 함께 많은 선물을 안겨주었다. 부산시청 전시실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과 소통하며 미국을 소개하고, 중국에서 참가한 작가들과 언어는 잘 통하지 않지만 작품으로 나누는 교감은 충분했다. 사진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지다 보니 어색함도 없고 대화의 소재는 끝이 없었다.
미국 이야기가 끝나기도 전 부산이야기로, 데스밸리에서 우포늪으로, 출사의 무용담에서 카메라 품평회까지… 몇 날 밤을 새워 이야기해도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대절한 관광버스로 이곳저곳을 안내 받으며 촬영하는데 이동 중에도 잠시 눈을 붙일 틈이 없다. 몸은 피곤해 보여도 표정들은 마치 수학여행 길의 같은 반 친구들 같다고나 할까? 모두 사진이라는 매개체가 만들어준 값진 선물이다. 저렇게들 좋아하는데… 더 자주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혼자 중얼거리며 맨 뒷자리에 목 움츠린 거북이 모양으로 반쯤 숨어 잠깐 눈을 붙여본다.
우리 협회의 내비게이터가 한 사람 있다. 미국이던 한국이던 모르는 곳이 없다. 출사장소 선정에서 길 안내까지 아마 자동차에 부착된 GPS보다 훨씬 정확할 것 같다. 마음씨도 나비처럼 곱고 이곳저곳 잘 다녀서 붙인 별명이 내비게이터다. 교편을 잡고 계신 부군을 따라서 한국 왕래가 잦더니 남해에 펜션을 지었다. 혹시 더 나이 들면 고국에서 살고 싶어질 것 같아 준비 중이란다. 꼭 그곳에서 자고 가야한다고 우리를 이끈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달리는 차 안은 정말 시끄럽다. LA에서도 어울려 출사를 나가는 날이면 모두 신나 떠들썩한데 꿈에서나 그리던 고국 땅의 출사여행이니 오죽들 마음이 설레고 신날까. 도무지 이 차에서도 눈 붙이기는 포기해야겠다. 그렇게 몇 시간을 달려 여장을 푼다.
말로만 듣던 청정해역 남해가 거실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한눈에 다 들어오는 그야말로 명당자리에 그림 같은 집을 지어놓았다. 펜션의 이름도 ‘남해이야기’란다. 이름만으로도 향수가 물씬 풍기며 한려수도의 풍광과 정취가 다정히 소리로 들려올 것 같고, 속도의 삶을 강조하는 도시생활에서 탈출한 여유가 주는 마음의 평안을 이곳에서는 마음껏 누릴 것 같다.
몇 시인지 모를 새벽인데 눈이 떠진다. 혹시 일어난 사람의 기척을 살피니 아무도 일어난 사람이 없다. 어제 밤늦도록 이야기하며 나눈 와인 한잔이 모두를 달콤한 늦잠으로 인도하는 것 같다. 깨워볼까 망설이다 독점(?) 촬영의 욕심이 슬며시 밀려온다. 사진하는 사람의 본성은 어쩔 수 없나보다.
“그래, 출사여행에서 늦잠 자는 사람들이 잘못이지 안 깨운 사람이 잘못이랴”
서둘러 카메라를 챙겨 부둣가로 나간다. 멸치잡이 배를 따라 무리를 이루며 따라 들어오는 갈매기 떼의 장관과 갓 잡은 멸치를 하얀 김을 연기처럼 품어내며 삶아내는 멸치잡이 배에서 느껴지는 삶의 역동성, 비릿한 바다내음에 기관의 모터음이 후각과 청각을 동시에 자극하며 엮어내는 삶의 현장을 향해 쉴새없이 셔터를 누른다.
혼자 나선 촬영의 후환이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오늘따라 귓전에 전해오는 셔터소리가 참 경쾌하게 느껴진다. 돌아가서 받을 비난의 소리들은 촬영이 끝나고 생각키로 마음먹고 셔터소리에 섞인 새벽공기를 마음껏 마신다. 언제 또 이 청정해역 공기를 마실 수 있으랴. 회원들이 혼자 나간 벌로 아침밥을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밥을 준다해도 셔터소리를 반찬 삼아 마시는 이 바다내음은 충분하고 후회 없는 한 끼의 식사가 될 것이다. 실컷 마셔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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