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카운티를 주 무대로 지난 20여년 동안 꾸준히 활동해온 샌타애나 심포니의 LA 시즌 오픈 콘서트(윌셔 이벨 극장)는 최근 한인사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과대포장으로 실속 없는 연주회에 비해 한껏 알차고 내용이 충실한 음악회였다.
한마디로, 지휘자 박종렬씨의 음악에 대한 성실하고 양심적인 자세와 콘서트 매스터의 훌륭한 리더십이 돋보인 연주회였고, 특히 이 날의 압권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발돋움하고 있는 루퍼스 최의 피아노 협연이었다.
생상의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의 제3막에 나오는 무용곡으로 서두를 연 오케스트라는 발레곡인 이 곡에서 아라비아풍의 이국적인 선율을 상쾌한 두 박자 리듬을 바탕으로 말끔하게 연주하였다. 이어서, 브람스가 작곡한 네 개의 교향곡 중 가장 남성적이며 종종 베토벤의 ‘영웅’ 교향곡과 비견되는 제3번을 연주하였는데, 이 곡은 음악적인 깊이나 내면적 표현이 어려워 자주 연주되지 않는 곡이다.
제1악장에서 보여준 현악기와 목관악기 사이의 대칭적 선율 및 화성 처리가 오케스트라 톤 밸런스를 유지하면서 섬세하게 이뤄졌고, 제2악장의 목관악기들이 나타낸 목가적인 분위기는 마치 베토벤의 ‘전원’교향곡을 상기시키고, 긴장감을 잃지 않으면서, 조용하고 소박한 내면세계를 잘 표현하였다. 제3악장에서는 서정적이면서 힘찬 첼로의 주제 제시가 명확하였으며 마지막 악장의 Tutti 부분은 막힘이 없는 웅장한 tone color와 약동하듯 강한 에너지를 실어내는 풍부한 오케스트라 음향은 이 곡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여 잘 표현해 주고 있었다.
이 날의 하이라이트인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은 피아니스트 루퍼스 최가 이미 14세 때부터 연주해 왔던 곡인데, 러시아적인 굵은 선과 색채감이 뛰어난 관현악법이 돋보이는 곡으로서 제1악장의 장엄하면서도 화려한 화성 구도와 자주 나오는 옥타브 passage 처리는 자칫 무겁고 둔해지기 쉬운데 반해 루퍼스 최는 피아노 톤의 중후함을 잃지 않으면서 깊이 있는 터치로 활기차게 드라이브해 나갔다. 제2악장에서는 세 토막 형식의 아름다운 목가풍의 선율과 왼손의 선명한 아르페지오 처리는 적극적이고도 강렬함을 내포한 독창적인 평화로움을 표출해 내었으며, 제3악장에서 보여준 무게 있고 선이 굵은 활기찬 피아노 터치에서 내뿜는 정열적이며 야성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소리는 오케스트라와 어우러져 청중들의 가슴에 감동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히 피아노 국제 콩쿠르 우승자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압권이었다.
진정우
<음악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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