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공부한 내가 왜 하필 화랑을 하게 되었는가? 라고 간혹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우연히 지요’라고 애매하게 대답할 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내 또래의 형제가 없이 자라난 나는 대신 아주 어릴 때부터 피아노연습 외에도 밴드, 연극. 영화. 그림. 문학을 하는 선배들을 무척 따랐으니, 가난이 수치대신 낭만을 품고 있는 듯한 그들의 분위기가 마냥 근사해 보이고 좋았던 듯하다.
아무도 안 읽어주는 시를 쓰고, 아무도 안 사주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그것만이 유일한 것인 양 오만했던 선배들이 밤을 새워가며 나누는 이야기들을 어깨너머로 들으면서 추구하는 장르는 달라도 모든 예술은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것임을 어렴풋이 알았고 나는 ‘정신’만이 결국 문제가 되는 유일한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
사실 모든 예술의 형태는 우리의 삶과 생각을 공유한다는 것에서 동일하며, 그런 면에서 음악을 전공한 내가 화랑을 운영하며 전시를 기획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전시기획을 통해 많은 작가들을 만날 때마다 나는 작가들 수만큼이나 다양한 그들의 이력에 놀랄 때가 많다. 시집을 출간한 화가, 자신이 출연한 연극공연 초대권을 내미는 화가, 심지어 자신의 전시 오프닝에서 전문가 이상의 첼로연주로 우리를 열광시킨 작가도 있다.
어쩌면 모든 감각기관을 열고 온 몸을 통해 대상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예술가들이 각자의 벽을 넘어 서로의 영역으로 스며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문학에서 받은 감동을 화폭에 옮기고, 그림에서 받은 감흥을 바탕으로 작곡을 한 예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숱하게 찾아낼 수가 있다.
드뷔시는 화가 모네와 가까이 사귀면서 그의 인상파 그림에서 음악적인 감흥을 받아 전통적인 화성을 부정하고 단조와 장조에 사로잡히지 않는 독특한 방식으로 환상적인 작품을 많이 썼으며, 추상화가 칸딘스키의 ‘즉흥’ 연작은 쇤베르크의 현악 6중주 ‘정화된 밤’을 듣고 영감을 받아 완성됐다.
표현주의화가 파울 클레는 여러 개의 독립된 선율과 주제가 동시에 흘러가면서도 수직적으로는 완벽한 화음을 연출해 내는 모차르트의 ‘돈조반니’중 5중창을 자신만의 독특한 선 드로잉과 색채 폴리포니(다성음악)의 결합으로 표현했는데 자신의 뛰어난 유머 감각마저 모차르트 음악에게서 배웠다고 말하곤 했다
꿈꾸는 듯 동화 같은 샤갈의 작품으로 꾸며진 무대는 스트라빈스키의 발레 음악에 신비로움을 더했고, 피카소는 많은 예술가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새로운 예술세계를 창조해 냈다. 무조음악의 창시자 쇤베르크는 당대의 유명화가들과 작품이 같이 전시되어도 좋을 정도로 훌륭한 화가였으며, 백남준은 대학 2학년 때 드뷔시에 관한 논문을 썼고, 졸업논문은 쇤베르크 연구였다 하니 음악으로 미술로 서로 교감하는 예술가들의 예술관이 서로의 작품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실감케 된다.
늘 같은 되풀이의 생의 메커니즘 속에서 우리가 매일 원하는 것은 세상과의 진정한 소통이며 화해이다. 그리고 예술의 힘은 바로 어제의 불협화음이 오늘의 하모니가 될 수 있는 소통에 있다. 순서가 일치하지 않는 듯한 삶의 어긋남 속에서 아직도 내 심장이 뛰고 있고, 감동으로 울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그래서 우리에게 생명이 유동함을 다시 느끼게 하는 위로의 힘, 그것이 예술이 줄 수 있는 소통의 힘이다.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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