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깊은 사랑은 마음의 고향처럼 가슴에 담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내가슴에 보석 같이 간직한 어머니에 대해 오늘은 웬지 지면을 채워 보고싶다.
어린시절 내겐 태산같이 커다란 어머니가 계셨다.
동생을 업고 머리에 큰 광주리를 이고 다니는 나의 어머니는 요술쟁이셨다. 무엇이든 요구만 하면 척척 나오는 머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매일 싸움질 하는 골목대장 오빠와 온 동네 아이들을 다 물어뜯어 울리는 여동생 , 껌딱지처럼 어머니 등에 딱 붙어다니는 막내, 검은 운동화 대신 빨간구두를 사달라고 졸라대던 나- 이렇게 우리 사남매는 어머니의 커다란 그늘에서 비바람도 산사태조차 어머니의 굵직한 팔뚝에 가려 덤비지 못했다.
그 태산같은 어머니는 내가 중,고시절에는 빛 바랜산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떡복이와 붕어빵이 좋았던 사춘기 시절에 버스 안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비릿한 냄새 가득 실은 생선장수 나의 어머니는 아주 반갑게 나를 부르는 통에 나는 가끔 그 태산에 슬픔의 메아리를 던지곤 했다. 그래도 그 산은 늘 넉넉히 받아주곤했다.
파장 길의 어머니의 커다란 광주리에는 팔다남은 생선과 길목 리어카의 떨이로 파는 꽃들은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생선 사세요오? 생선! 우렁차고 씩씩한 대장부 같은 팔뚝굵은 나의 어머니는 하루를 마친 늦은 밤에는 비린내와 범벅이된 보라색 들국화를 손에쥐고 오실땐 수줍은 복숭아볼을 가진 소녀가 되어 들어 오시곤 했다.
하루의 지친 피로에도 불구하고 꽃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잔잔한 행복이 깃든 눈길은 중년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도 가슴에 파문처럼 번져온다.
어머니의 팔다 남은 생선과 보라빛 들국화는 마치 도심에서 벗어나 시골로 향하는 마음의 관계처럼 늘 함께 다녔다.
계산을 잘 못하셔서 잔돈을 더 주기도 했던 어머니.
배우는게 힘이여.배워야 세상을 끌고가지!. .잔소리처럼 하시던 그 말씀이 마음 깊은 곳의 한이 였으리라.
중학교도 못 마친 어머니는 그 굵은 팔뚝으로 우리 사남매를 대학까지 다 보냈는데 우린
태산은 커녕 낮은 언덕도 못 되고 있으니---- .
세상을 끌고 가는 것은 배움이 아니고 어머니의 강한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끌고 간 다는것을 어머니는 아실지.
이제 그 우렁찬 어머니는 온데간데 없고 가녀린 팔뚝과 함께 껍질만 자글자글 덮힌 아주 조그마한 몸집으로 우리를 올려다 보신다.
나는 오늘 어머니에게 보라색 들국화꽃을 한다발 사드렸다.
생선 비린내는 내가슴에 담은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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