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책이나 글이 사람을 바꾼다고 굳게 믿는다. 드라마도 영화도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티비나 영화를 보다가 조는 버릇이 생겼다.
비몽사몽간에 맑은 정신이 아닌 상태로 보는 것이 어찌 나를 바꿀 수 있을까? 내가 읽은 책들에 그어진 많은 밑줄 중 한 구절이 말하듯 ‘가장 또렷또렷하게 깨어있는 시간들을 바치는 독서만이 참다운 독서’--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월든’ 중에서--임에 동의한다. 그런 독서가, 결국 그 밑줄이 내 인생의 토대가 되었음을 안다. 독서에 관한 한 많은 사람들의 방식대로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처세술이나 재테크 책은 읽지 않는다.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에겐 은근한 경쟁심이 있다. 책을 많이 읽는 이에게 질투가 나지 돈 많은 이는 부럽지 않다. 교회에 새로 도서실이 생기자 올해엔 성가대를 할까 도서관 봉사를 할까 무척 갈등했다. 30년 넘게 한 성가대경력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도서실 봉사가 하고 싶었던 건 새 책을 먼저 만져보고 싶은 욕심에서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피오피코 코리아타운 도서관의 후원회를 돕는 일도 15년이 넘었다. 그 이유도 단순하다. 책이 많은 그 분위기가 무조건 좋기 때문이다.
내겐 문자 중독증 같은 것이 있는 듯하다. 책이나 신문 외에도 영수증의 뒷면이나 광고 전단지, 브로셔, 음식물 투고 박스 안의 종이뭉치, 심지어 식당의 메뉴판도 다 읽어보아야 직성이 풀린다. 좋은 독서 태도는 아니다. 안 해도 될, 영양가 없는 읽기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 책 욕심 때문에 자동차 안은 책방 같다. 차 안에 책이 열 권 이상 있으며 핸드백과 더불어 책 보따리를 매일 집에 들였다가 회사로 가져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게으른 내가.
내게 단점이 많지만, 특히 큰 단점은 책을 읽을 때 방해하면 무척 신경질을 낸다는 거다. 강아지가 밥 먹을 때 건드리면 으르렁대듯. 책에 몰두하면 밥도 안하고 청소도 않는다. 그래서 내 입장을 변호해 주는 방패로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중에서 ‘식사를 간단히, 더 간단히, 이루 말할 수 없이 간단히 준비하자. 그리고 거기서 아낀 시간과 에너지는 시를 쓰고, 음악을 즐기고, 자연과 대화하고, 친구를 만나는 데 쓰자.’ 이 구절을 나의 계명인 듯 읊곤 한다. 그러면 스캇 니어링도 아닌 나의 남편은 그야말로 성의 없는 밥상을 받으면서도, 마누라의 문화생활에 동조를 하느라 불평을 못하는 것이다. 이젠 동참의 수준을 넘어 설거지도 하는 외조(?)의 경지로 들어선지 오래되었다. 다만 그 외조가 젓가락을 한짝 한짝 닦느라 열나절이 걸려 옆에서 보는 이가 열불이 나는 지경이긴 하지만서도.
책읽기에 몰두하다가 중요한 구절은 밑줄을 긋고, 내 글에 꼭 한번 인용해 보고 싶은 구절은 메모해둔다. 그런 구절이 모아지면 그 문장을 활용한 글이 쓰고 싶어 안달증이 생긴다. 남보다 잘 쓰는 것도 아니고 미려한 문장을 구사하지도 못하면서 병이 도지는 것이다. 잠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몽유병자처럼 컴퓨터를 켜고 자판을 두드리면 자는 줄 알았던 남편이 한소리 거든다. “글 못써서 죽은 귀신이 또 들어왔나?”
그 분(?)이 내게 오시면 나는 즐겁다. 머리를 쥐어짜도 즐거운 고통이며, 글하나 쓰고 나면 곳간을 채운 듯 부자 된 기분이다. 끈기 없고 쉬이 지치는 내게 오로지 흥미있는 일이 ‘글쓰기’ 라는 것이 신기하다. 정년도 없는 글쓰기를 죽을 때 까지 할 수 있는 이는 행복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문학’ 죽도록 사랑할테다.
이정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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