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풍묵(1959~) ‘멧돼지’ 전문
이 나라 입시생은 인간이 아니다 다만 고3일 뿐이다
그래도 푸른 나이 문득문득 주체 못할 힘을 뿜는다
쉬는 시간 복도를 휘젓는 튼실한 줄달음질 바라보아라
식판에 산처럼 쌓인 밥 무너뜨리는 숟가락질 바라보아라
녀석들을 학교 뒷산 아차산 멧돼지라 부르기 넉넉하다
심지어 급식이 배달되는 통로를 향해 돌진한 친구도 있다
인류는 가장 먼저 개를 길들였다 가장 나중 말을 길들였다
오래 길들여진 애완견은 자기도 사람인 양 식구를 자청하고
기계화된 말들은 천리를 달리고도 말똥 누울 곳이 없는 지금
농경 목축 이래 길들여진 가축 중 가장 친근한 돼지는 그래도
누구에겐 동전을 누구에겐 자손 번성을 누구에겐 복을 준다
하지만 수업이 졸음에 겨워 시드는 복돼지가 늘어나는 학년 말
우리들의 야성을 위하여 우리들의 건강한 본성을 위하여 나는
길들여진 졸음을 회초리로 깨워서 너는 본래 멧돼지니라 너는
두고 온 선사 시대 들판을 찾아가라 내몰기 일쑤인 것이다
금년에도 멧돼지가 도심 곳곳 출몰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서울 호프집에 나타나 맥주를 어설프게 청하다 쫓겨났다더니
전화국 뒤 강변 도서관 앞 여학교 밖에서 킁킁거리기도 했단다
북한산 아차산 등지에 서식하는 멧돼지의 개체가 늘어나면서
내가 깨워 보낸 졸음들이 푸른 지구의 나이를 거슬러 가는 길에
좌충우돌 킁킁 세상에 숨겨진 고구마를 캐는 현상이라고도 한다
고3이면 십대의 마지막으로 가장 혈기왕성한 시절이다. 그러나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멧돼지에 비유된다. 멧돼지는 어지간해서 지치지 않는다. 호기심도 왕성하고 질주의 본능도 있다. 그런 점에서 고3과 멧돼지는 많이 닮아 있다. 호프집이라든지 도서관이나 여학교 등등을 킁킁거리며 기웃거리다 가차 없이 쫓기기 일쑤인, 멧돼지들은 오로지 한 곳을 향해 질주해야 한다. 대학교를 향해 모든 소리들은 이들을 몰아간다. 이것이 본국 고3 수험생들의 현실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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