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렛 한
빨간 마후라, 그 열정
(보다 더 뜨거운 물결)
얼마 전 작은 아이가 학교 강의를 녹음한다고 녹음기를 사왔다.
옛날에 아버지께서 일본인한테서 녹음기를 사오셔서는 집에 손님만 오면 기계를 앞에 놓고 술 한잔 노래 한가락 그리고 웃음 한 보따리를 풀어 놓으시곤 했다.
그 때의 녹음기는 덩치가 타자기 만했다. 이젠 녹음기가 엄지 손가락 만하다. 이를 i-pod에 연결해 들으니 깨끗하게 명확하게 잘 들린다.
아이가 학교 프로젝트로 카우아이엘 가는데 방수 잠바가 필요하다고 해서 함께 상점엘 갔다. 아이가 운전을 하며 CD 음악을 크게 틀어놓더니 따라한다. I lay my life down at your feet. You are the only one I need. I turn to you and you are always there in troubled times. You are always there. 무슨 노래냐니까 호주의 유명한 Hillsong 그룹의 복음 송으로 젊은 층에서 인기 짱이라는 것이다.
에어콘이 싫어서 창문을 열어놓았는데 갑자기 옆 차선에서 Hello 라고 소리친다.
돌아보니 20대 미국 사내녀석 둘이 “Good music.” 하더니 찰칵. 아이 사진을 찍는다. 뭐에 쓸려는지...
이젠 손가락 3개 만한 핸드폰으로 말도 하고 인터넷도 보고 게임도 하고 사진도 찍는다. 녹음기도 사진기도 컴퓨터도 ..기계 변화의 속도는 가히 초고속이다.
상점에서 방수복을 찾는데 마땅한 게 없는 모양이다. 그래서 급하게 억지로 사지말고 우선 내 것을 쓰고 나중에 맘에 드는것으로 사라고 했다.
아이가 보더니 Hood가 없어서 안된다나. 그러면 마후라를 쓰라고 했더니 단호하게 거절하며 말한다.
첫째 지금은 2009년이지 옛날 시대가 아니다.
둘째 여긴 미국이지 한국이 아니다.
셋째로 난 23살이지 엄마 세대가 아니다.
그러고 보니 한 두번 단아한 일본 할머님 몇 분이 쓴 것 외에는 이곳에서 마후라 쓴 사람을 보지 못했다. 아무렴 그렇지, 모든게 초고속으로 변하는 세상에 옛날 고리짝 마후라를 왜 쓰겠나.
요즘은 꽃샘 추위인지 바람이 세고 매서워 창문을 닫아도 춥다. 외출을 하자면 따뜻한 옷을 찾게 된다.
헌 구두가 편하듯 구시대 유품 마후라도 쓰고 싶다. 빨간 마후라 생각이 난다. 하늘을 뚫을 듯 솟구치는 기체를 몰고 창공으로 날아가는 빨간 마후라의 꿈과 열정이 보일 것 같다. 미국의 팬텀 전투기 빨간 마후라들의 별명은 독수리라던가. 빨간 마후라는 하늘의 사나이랬나..
늦은 저녁 일과를 마친 후 가방을 들고 길에 나서니 머리를 흩트리는 찬 바람에 코와 귓볼이 시리다. 세상이 얼고 있다. 경제 한파, 정치 한파, 도덕 한파… 너무 춥다.
따뜻하게 감싸 줄 마후라가 그립다. 꿈과 열정과 의리의 빨간 마후라가 그립다.
그런데 지금 그보다 더 따뜻한 물결이 넘치고 있다. “감사합니다. 서로 사랑하세요.” 목소리 물결! 참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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