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세출의 건축가 루이스 칸의 신념이 유감없이 발휘된 건축 작품 ‘소크 생물학연구소’를 보려고 길을 나선 날은 이른 아침부터 내린 비로 도시가 온통 회색빛이었다. 19년 동안이나 키워온 봉이(나의 애견)가 나름대로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내고 떠난 다음날이라 난 스산하고 헛헛한 마음 끝에 이 소란스런 도시를 잠시 떠난 것이다. 어떤 장소도 완전히 미지의 곳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 불가능한 우리 시대, 시간을 잠시 정지시키고, 생각 같은 것은 안 하고, 그저 상실로 인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실감할 수 있는 곳으로 칸의 건축을 떠올린 것은 그의 건축공간이 갖고 있는 침묵의 위로 때문이다.
해안선을 따라 2시간가량 운전 후 라호야(La Jolla)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막 그친 정오였고 내 시야에 드러난 칸의 건물 ‘소크 생물학연구소’는 허공위에 걸려 있는 듯, 바다에서 솟아오른 듯 참으로 기품 있게 생긴 절대공간이었다.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본질을 선명하게 드러낸 이 건물은 변화와 소멸이라는 영원한 시간의 법칙을 잠시 응고시킨 듯 했고, 건물 정중앙에서 바다를 향해 열려 있는 물길은 마치 바다가 역류해 오는 듯 무한히 연장되었다.
그의 건축은 항상 빛을 주체로 하여 유동적인 흐름을 공간에 부여하고, 빛은 항상 공간을 변화시키며 다양한 공간을 연출한다. 원기둥, 입방체 등 기하학적인 형태를 반복하면서 콘크리트와 나무 등의 기본적 소재로 한정된 루이스 칸의 건축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침묵과 빛이다.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엄격한 보자르(Beaux-Arts) 전통의 교육을 받았으나 중세풍 도시에 더 큰 관심을 보인 그는 건축의 본질에 대한 탐구자이며 대담하게 사색하는 자였다.
연필을 살 수 없을 만큼 가난한 유대인 이민자에서 예일대학의 건축학 교수로, 20세기 최고의 건축가 중 하나로 인정받았으면서도 실제로 작업하던 건축사무소는 늘 적자에 허덕였고 죽기 직전까지 비밀리에 세 집 살림을 동시에 했으며, 각 집마다 아이들을 두고도 보살피지 않은 채 떠돌다가, 1974년 뉴욕 기차역 화장실에서 주소가 지워진 여권과 함께 발견되어, 행려병자로 시체 안치소에 방치되는 참담한 죽음을 맞이한 그의 내적 모순을 그는 건축을 통해 화해시키려 한 듯하다.
‘건축가는 지적 감수성으로 보편적 세계를 보는 자’라고 하였던가? 얇은 콘크리트 패널과 빛바랜 목재가 그대로 노출된 채 격자창으로 무심히 뚫린 공간을 어슴푸레한 초저녁 박명 속에서 바라보면서 난 루이스 칸을 평생 떠돌게 만든 그 닿을 수 없던 그리움을, 그의 잴 수 없는 욕망을, 그리고 이 공간에 머물다간 수많은 햇살과 바람을 생각했으며, 지난번 이곳에 함께 왔으나 이제는 곁에 없는 봉이와의 깊은 인연을 생각했다.
늦은 저녁, 어수선한 소음의 도시 LA로 돌아오는 길, 그러나 침묵으로 나를 위로한 루이스 칸의 건물은 이제 내 안으로 무한히 연장되어 마음 깊은 곳에 화석처럼 잊혀질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칸은 방글라데시 국회 의사당과 예일대학 아트 갤러리와 예술센터, 킴벨 뮤지엄을 지었으며 LA 근교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소크 생물학연구소이다. 주소 10010 N Torrey Pines Rd. La Jolla)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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