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늙은 느티나무는 하숙생 구함이라는 팻말을 걸고 있다
한때 저 느티나무에는 수십 개의 방이 있었다
온갖 바람빨래 잔가지 많은 반찬으로 사람들이 넘쳐났다
수많은 길들이 흘러와 저곳에서 줄기와 가지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발빠른 늑대의 시간들이 유행을 낚아채 달아나고
길 건너 유리로 된 새 빌딩이 노을도 데려가고
곁의 전봇대마저 허공의 근저당을 요구하는 요즘
하숙집 문 닫을 날 얼마 남지 않았다 그래 지금은
느티나무 아래 평상을 놓고 틱틱 끌리는 슬리퍼, 런닝구,
까딱거리는 부채, 이런 가까운 것들의 그늘하숙이나 칠 뿐
류인서 (1960~) ‘느티나무 하숙집’ 전문
한때는 수십 개나 되는 방을 가지고 하숙을 쳤다는 말로 미루어, 느티나무는 대단히 넉넉한 품을 가졌던 것으로 짐작된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고 평화가 느껴지는. 그러나 시대에 떠밀려 점차 나무는 본 모습을 잃어간다. 새로 들어선 빌딩에 가려 노을 지는 것을 볼 수도 없고, 전봇대의 방해를 받아 마음 놓고 기지개도 펼 수가 없고. 콘크리트 속으로 함몰되어가는, 자연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티나무를 통해 말하고 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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