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연인 지그문트와 지글린데 역의 플라시도 도밍고와 앤자 캠프가 사랑의 노래를 열창하고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앤자 캠프
열정 넘치는 연기 ‘완벽 호흡’
바그너 오페라 ‘링 사이클’의 두 번째 작품인 ‘발퀴레’(Die Walkure)를 보고 나면 1편 ‘라인의 황금’(Das Rheingold)를 왜 서막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또한 전 4편의 링 사이클 중 하나만 보고 싶다면 이 발퀴레가 추천된다는 이야기도 수긍이 간다.
신들과 난장이들과 거인들의 이야기였던 1편이 신화적 요소들로 압도돼있다면 2편은 훨씬 인간적이고 드러매틱한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무대 역시 훨씬 더 버라이어티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4시간이라는 긴 공연시간이 전혀 지루한 줄 모르고 관람할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한 지점에서 만나 사랑과 배신, 싸움과 패배, 죽음과 약속의 이야기가 씨줄과 날줄 엮이듯 운명적이고 비장하며 감미롭게 펼쳐지는데 놀라운 것은 그 복잡하고 자세한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주고받는 대사의 정교함이다.
특히 운명적으로 하나인 쌍둥이 연인 지그문트와 지글린데가 짝을 찾는 1막과 2막은 사랑의 시와 같은 황홀한 대사들이 아름다운 음악에 얹혀 사무치듯 이어진다. 문득 이 대사를 독일어 원어로 알아들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도록 지고지순한 사랑의 언어들로서 요즘 세상에는 어떤 시와 노래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순수한 감정의 극치를 표현한다. 또한 보탄과 프리카의 부부싸움은 너무도 ‘인간적’(그들은 신이다)이고 현실적이어서 시대를 망라한 인간 감정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는데, 바그너가 이 오페라의 대사와 음악을 다 창조했다니 그는 과연 천재요, 인간의 사랑과 욕망에 대한 이해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 경탄하게 된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것은 플라시도 도밍고의 공연이었다. 지그문트 역을 맡은 도밍고는 너무나 젊고 멋지고 정열적인 공연으로 무대를 사로잡아 도무지 68세라는 그의 나이를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글린데 역의 소프라노 앤자 캠프와 함께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는데, 두 사람의 지그문트와 지글린데는 이미 워싱턴 내셔널 오페라에서 호흡을 맞췄을 때 워싱턴 포스트가 “금세기 최고의 궁합”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도밍고와 캠프 외에도 이날 무대에 선 모든 가수 보탄(Vitalij Kowaljow)와 프리카(Michelle DeYoung), 훈딩(Eric Halfvarson), 브룬힐데(Linda Watson)가 모두 대단히 흡족한 공연을 보여주었다. 브룬힐데 역의 린다 왓슨은 초반에 좀 약하고 불안정했으나 그녀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 3막서부터는 안정감을 찾아 강렬하고 비극적인 브룬힐데의 모습을 충실하게 노래했다.
논쟁이 계속돼온 아힘 프라이어의 프로덕션은 2편에 들어서 훨씬 안정된 모습이다. 기괴한 분장과 거대한 마스크로 그 깊은 뜻을 헤아리기 어려웠던 1편의 무대는 초현실적이라 해얄지, 우주적이라 해얄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버전 같았었는데 2편을 보면서 그 특이한 무대 디자인과 의상, 분장에 대한 의문과 궁금증과 많이 해소됐으며 프라이어가 만든 상상의 세계에 어느 만큼씩 젖어드는 느낌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사운드에 관해서는 아직도 부정적인 평가가 계속 나오고 있다. 오케스트라가 깊숙이 내려앉고 그 위에 막을 씌운 채로 연주하기 때문에 웅장하고 바그너 음악의 진수를 느낄 수 없다는 비평이다. 헌데 일각에서는 바로 그것이 바그너가 의도한 링 사이클 사운드라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솔직히 오페라의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은 사운드에서 전혀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는 의견을 살짝 덧붙인다. 9월에 있을 3편 ‘지그프리드’와 내년 4월 공연될 4편 ‘신들의 황혼’에 대한 기대가 점점 더 커져간다.
‘발퀴레’ 공연은 오늘(8일, 오후 1시), 12일(일, 오후 1시), 16일(목, 오후 6시30분), 19일(일, 오후 1시), 22일(수, 오후 6시30분), 25일(토, 오후 6시30분) 6차례 더 계속된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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