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과수원에
파릇파릇 돋는 저것은 풀이 아니다
노랗게 발갛게 피는 저것은 꽃이 아니다
바람에게 물어봐라
햇빛에게 물어봐라
대지를 물들이는 저 쑥과 냉이, 씀바귀에 대해
과수원 언저리를 온통 노랑물살 지게 하는 저 유채꽃에 대해
산비둘기가 나뭇가지에 두고 간 울음
그 여운 끝자락을 붙잡고 화들짝 꽃봉오리 여는 홍매에 대해
지난 겨울의 눈바람을 먹고
열병처럼 퍼지는 가뭄을 먹으며
온몸으로 대지가 쓰는 시, 나무가 쓰는 시
뻐꾹새에게 물어봐라
벌, 나비에게 물어봐라
저 시 없다면 누가 봄이라 하겠나
저 시집 한 권 읽지 않고 어떻게 봄을 말할 수 있겠나
별과 달이 밤새도록 읽다 펼쳐둔
과수원 시집
나는 거름 져다 나르며 읽고
앞산 뻐꾹새는 진달래 먹은 듯 붉게 읽는다
배한봉 ‘과수원 시집’ 전문
시는 쉽게 써지지 않는다. 산고(産苦)에 비유할 정도다. 봄 역시 쉽게 오지 않는다. 눈바람을 먹고, 겨울 가뭄을 견뎌낸 다음에야 간신히 계절을 건너온다. 그러기에 시와 봄은 동격의 의미를 갖는다. 시어 하나하나가 고통스럽게 차용되는 것처럼 과수원 언저리를 물들이고 있는, 쑥과 냉이 씀바귀들도 쉽게 찾아온 것들이 아니다. 과수원을 한 권의 시집으로 읽어내는 시인은 우주 전체를 보다 커다란 시집으로 읽고 있을 게 분명하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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