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넘게 우리 화랑에서 예술사를 공부하고 있는 아트 클래스 멤버들 중 나를 포함 여섯 여자들이 지난주 8박9일의 일정으로 함께 파리에 다녀왔다.
힘주어 마침표를 찍으려 욕심 부리지 않는 여행이기를 바라며 시작된 일정은 잔 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 등 프랑스 역사의 매 순간들을 지켜본 파리 노트르담 성당에서의 부활절 대미사 참석을 시작으로 파리의 크고 작은 뮤지엄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그야말로 그림 속을 거닌 시간들이었다.
원을 긋고 도는 달팽이 같은 일상성의 질서를 깨고, 옷에 달린 거추장스러운 장식들을 떼 내듯 떠난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프랑스적이라는 말 속에 총략되는 자유, 청춘, 모험, 예술, 사랑, 천재… 등이 사실적인 힘임을 실감하였고 편견없이 산다는 것의 너그러움을 엿본 우리 인생의 부활절이기도 했다
우리의 대부분의 날들은 가족 간의 단란함, 생활의 안정 등 긴장 없는 안락함에 우리를 고정시키려는 노력과, 그 노력의 덧없음을 인식하는데서 오는 쓸쓸함 사이에서 반복하여 흔들리고 있는 시계추이다. 이런 소시민성이 갖는 권태와 안정감 속에서 예술, 사랑, 모험 이런 단어들은 어느 날 문득 아무런 연결 없이 흩어져 사라지게 되며 육체의 쇠잔함이 오기도 전에 모든 것에 무감해지는 정신의 늙음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이런 소중한 것들이 우리의 의식 밖으로 스쳐지나가는 것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여행이며, 그런 의미에서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일회적이고 유일한 삶속에서 고단하게 살아온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줄 수 있는 훌륭한 선물이기도 하다.
실존주의 철학의 거두 사르트르와 여성해방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한 보부아르가 동지적 사랑을 나누던 오래된 카페에서, 피아노의 시인 쇼팽과 그의 연인이었던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가 거닐었을 좁다란 골목길에서.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등이 드나들던 낡은 책방에서 우리는 일상의 질서 속에 숨겨져 불투명하게 보이던 예술가들과 반가운 대면을 하기도 했고, 낯선 장소, 낯선 언어, 낯선 얼굴 속에서 문득 우리의 정신에 불이 켜지듯 내면이 밝아지면서 깨어있는 의식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도 경험하였다.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르고 /우리들의 사랑도 흘러간다 /그러나 괴로움에 이어오는 기쁨을 /나 또한 기억하고 있나니 / 밤이여 오라 종이여 울려라 / 날들은 가고 나는 머무네 /날이 가고 세월이 지나면 /흘러간 시간도 /사랑도 돌아오지 않고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 강만 흐른다
파리를 떠나기 전날 밤 바라본 비에 젓은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여전히 흘러도 미라보 다리를 노래한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는 이제 가고 없고 그의 연인 마리 로랑생 또한 없다. 언젠가 우리도 흘러갈 것이며 세느강은 여전히 흐를 것이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 일상으로 돌아간 여섯 여자들에게 파리에서의 짧은 매혹은 이제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응고되어 단 내 나는 그리움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 우리의 삶은 새로운 여행길, 낯선 거리에서 다시 벅차오르고 또다시 감동으로 울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이니, 현재를 살며, 새로운 여행을 꿈꾸는 나를 포함한 모든 이들 에게 삶이란 릴케의 시집 제목처럼 “나에게 축제, 또 당신에게 축제”이기를.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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