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을 잘 때 눈 위에 세로로 반창고를 붙이고 잔다. 애꾸눈 해적선장 재크 형님도 아니고 조폭도 아닌 조신한 아줌마의 이야기이다. “나 잔다아~~~”하고 식구들에게 광고를 한 후 테입을 눈 위에 붙이는 괴기스러운 장면을 연출한지도 한 달이 넘었다.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 거울을 보니 무언가 불편했다. 오른쪽 눈이 무척 부어 있고 오른편 윗입술도 부어 있는 거였다. 세수를 하는데 비눗물에 눈이 따갑고 입은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눈도 떠있는 상태에서 감기지가 않는 것이다.
평생 안 해보던 윙크를 시도하니 눈이 깜빡이질 않는 거다. 자세히 관찰하니 입도 한쪽으로 처진 것이 소위 입이 돌아갔다는 게 이게 아닌가 싶었다. 병원 가기에 게으른 나도 안면에 이상신호가 오니 가슴이 덜컹하고 구안와사는 한방으로 다스린다는 상식대로 한의원으로 갔다. 침을 맞고 한약을 지어오고 마음이 평안해지자 주치의에게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치의에게 전화로 증세를 말하니 대번에 한의가 말하는 ‘풍’이 아니고 ‘Bell’s Palsy’라는 이름이 붙은 안면마비란다.
부랴부랴 처방을 받아 항바이러스제를 먹고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니 증세가 많이 호전되었다. 면역력이 떨어지는 이에게 감기처럼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증세가 오는데 그런 것 중 하나라고 한다. 오십대에 풍이라니 겁이 났는데 그게 아니라니 조금 안심은 되었다. 완치는 안 되었는지 피곤하거나 찬바람을 쐬면 조금 더 입이 돌아가기도 하고 눈이 다시 붓기도 한다. 늘그막에 심심치 않게 하려는 뜻인지, 교만하지 말라는 경고인지 각종 병을 다 경험하는 중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우리 인간의 신체 기능은 25세 전후가 피크이며, 그 이후로는 하루하루 저하되기 시작한다고 한다. 빠르면 40대에 접어들면서 잠행하고 있던 ‘노화현상’이라는 불청객이 슬슬 그 모습을 드러낸다. 50대인 나는 어쩌다 돋보기 없이 구역예배라도 가면 잔글씨의 성경을 문맹자처럼 더듬거리며 읽어야 해서, 요즘 젊은이들 말대로 대략난감 지경에 이른다. 크레딧 카드를 서명할 땐 안 보이는 글씨로 인해 터무니없는 팁을 적고 민망한 적도 있었다.
신체적 노화보다 더 고민해야 할 것은 정신적 노화는 어느 지경에 이르렀나 하는 점이다. 나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계로록을 쓴 소노아야코는 “받는 것을 요구하게 된 사람을, 그가 몇 살이든 노인이라고 생각하기로 하고 있다. 육체적 나이가 몇 살이든 주고 있는 사람은 참다운 성년이며, 받는 것만을 요구하면 아무리 젊어도 노인이다”라고 설파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립의지가 강하고 끊임없이 자기 향상을 추구하여도 노화는 진행성이며 결코 그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진시황의 불노초로도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학으로도 인간의 한계수명은 125세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스콧 핏제럴드의 소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신기한 설정처럼 거꾸로 가는 시계로 인해 점점 젊어지지 않는 바에야 늙음을 막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노년의 괴로움이란, 우리들에게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다고 확신하고 부여하신 신의 사랑이라고 해도 좋겠다. 유유자적하면서 늙음의 현상들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거친 음식을 피하고, 정직하게 살다보면 장수하는 것이 예전부터 내려온 비결이라고 한다. 결국 인생을 바로 사는 자세는 시대를 초월한 웰빙의 방법인 것이다.
저자거리에서 시도 때도 없이 윙크를 날리고 혀로 살짝 오른쪽 입술을 들어 보이는 섹시 컨셉의 아줌마를 보시거든 “봄바람 났다”고 오해마시기 바란다. 눈과 입술을 바로잡는 연습을 하는 중이니까. 눈을 마음대로 뜨고 감을 수 있다면, 입이 한일자로 다물어진다면, 당신은 무척 행복한 사람이다.
이정아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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