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김연아 선수의 우승도 지나간 이후, 자주 이메일을 주시는 분들이 한동안 앞을 다투어 보내주셨던 웹페이지 링크는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한 장면이었다.
한동안 세계의 화제가 된 폴 팟츠의 여자 버전인 수전 보일의 스토리는 라디오와 TV, 그리고 신문을 통해 토막토막 접한 뉴스로 내용은 알았지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그 장면을 직접 클릭해 보았다.
“프로 가수가 꿈”이라는 수전에게 거침없는 공포의 심사평으로 이름난 사이먼이 “누구 같은 가수가 되고 싶으냐”고 묻자 ‘영국 뮤지컬의 퍼스트레이디’로 불리는 일레인 페이지라고 서슴없이 대답하였다. 태도는 씩씩하였지만 부스스한 외모의 스코틀랜드 시골 아줌마가 심각 무뚝한 표정으로 말하는 ‘섹시 디바’의 꿈은 쌩뚱맞아 보였다. 그렇지만 꿈인들 왜 못 꾸겠는가!
얼마나 많은 성악 전공 음대생들이 칼라스나 테발디 같은 디바가 될 꿈을 안고 대학문을 들어섰을까! 대학 시절 칼라스가 부른 롯시니의 ‘우나 보체 뽀코 파’를 들으며 그녀의 카덴자를 채보하며 연습하던 내 모습이 생각났다.
테발디가 만들어낸 ‘나비부인’ 역에 몰두하였던 나는 이탈리아 유학시절에 그녀의 집 근처를 여행하다 성지순례라도 하듯 가슴 설렌 기억도 떠올랐다.
드디어 수전이 숨을 깊게 들이 마시더니 입을 열었다. 거침없이 환하고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쫘~악 뽑아낸 “I dreamed a dream”의 첫 프레이즈부터, 다소 관망적이던 나의 가슴이 감동으로 진하게 적셔졌다. 그녀의 노래는 마치 누에고치에서 나오는 명주실이 즉석에서 실크 날개옷으로 변하는 듯 첫 순간부터 하나의 완성품으로서 나를 사로잡았다. 이미 마음에서 마음으로 연결이 되었다고나 할까, 노래의 발성을 넘어서는 그녀의 ‘기쁨’이 느껴졌다. “노래하는 순간 나는 누구보다 행복해요! 당신에게도 이 기쁨을”
테너 질리(Gigli)는 선배로서 성악가들에게 충고하였다. “노래하는 순간만큼은 즐겨라. 가진 모든 것을 노래에 실어 관객에게 주어라” 수전 보일은 노래하는 자체를 ‘즐기며’ 그 ‘꿈’을 당당하게 나누어주는 삶의 해방감 속에 있었다.
시각이 오관의 71퍼센트를 차지한다는 통계처럼, 예쁘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외모지상주의 시대에, 많은 가수들이 가창력보다 외모 때문에 탈락되거나 커리어를 포기하였을 것이다. 이미 미운 오리새끼 같은 외모 때문에 경연대회에서 몇 번 탈락한 경험을 가진 수전은 예쁜 외모나 각고의 훈련보다 내면의 아름다운 소리가 얼마나 힘 있게 가슴으로 파고드는가를 설명할 필요 없이 통쾌하게 보여주었다.
유튜브에서 수전의 역할 모델인 일레인 페이지가 불렀던 같은 노래도 들어보았지만 이런 감동은 아니었다. 마치 호손의 ‘큰 바위 얼굴’ 스토리처럼 수전 자신이 결국 도저히 넘볼 수 없었던 그 모습 자체가 된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한 사람을 이상형으로 정하고 끊임없이 꿈을 키워오던 수전 보일은 그 환상을 뛰어넘어 ‘꿈’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성악가·라디오서울‘이브닝 클래식’진행> sopyh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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