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인해 국제적인 미술 페어, 해외 공연 등이 전체적으로 침체되고 있는 가운데서도 한인 예술가들의 뉴욕 활동은 계속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뉴욕을 찾은 무용, 음악, 미술 등 각 분야의 한인 예술가들을 만났다.
혼이 깃든 춤꾼 정신 이어야죠
한국무용가 안병주·귀희 교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부채춤과 화관무를 알고 있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 행사의 기념공연부터 유치원 장기자랑까지 수준과 규모는 달라도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는 춤들이기 때문에 적어도 몇 번씩은 이 춤을 접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수백년은 이어 왔을 것으로’ 짐작하던 이 춤이 지금은 은퇴한 한국무용의 거두 김백봉씨에 의해 안무되어 1950년대 이후에서야 처음으로 공연되었다는 사실은 거의 알지 못한다.
김백봉씨는 한국 무용의 신화적인 인물이자 여전히 불세출의 스타로 남아있는 최승희씨의 수제자다. 그리고 지난달 31일 퀸즈 극장에서 공연한 안병주 경희대 교수와 안귀희 서울종합예술전문학교 교수는 김백봉씨의 딸과 손녀로 김백봉 춤의 전통, 더 나아가 최승희 춤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계승자들이다.
김백봉씨의 남편 안제승씨는 또한 최승희씨의 남편인 안필승씨와 형제지간이라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초대 대한무용학회장을 역임하며 한국에 무용 연출과 무용 이론을 정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런 부모를 둔 안병주 교수가 춤의 길로 접어든 것은 어쩌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김백봉 선생님은 80 평생 춤 이외에는 어떤 것에도 관심을 갖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춤을 추는 목적도 돈과 명예가 아니고 ‘마음이 하나가 되기 위해’라고 늘 말해온 순수한 춤꾼입니다. 제가 그분에게 정말로 배운 것은 기교가 아니고 그런 예술가 정신입니다.” 안병주 교수는 절대로 ‘어머니’라는 지칭을 쓰지 않고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그가 무용가 어머니를 대하는 경외의 마음이 느껴진다. 안귀희씨도 같은 감정을 할머니에게 갖고 있다. “엄격하신 것 같지만 사실은 원칙과 규율보다는 춤 자체를 즐기라는 것이 할머니의 지론이었어요. 가르치는 학생들의 태도가 안타까운 경우도 있지만 그 정신을 전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백봉은 기교로만 추는 춤을 단호히 거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살풀이’를 춘다면 정말로 억울하게 죽은 사람을 달랠 수 있도록,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이 서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도록 추라고 말했다. 두 안 교수가 지키려고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박원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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