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간만에 여행길에 올랐었다. 운전을 하지 않으니 너무 좋아 맘껏 차창 밖의 푸른 나무들을 감상했다. 사무실에서 컴퓨터에 시달리던 눈에게 영양을 공급할 좋은 기회다 싶어 푸른색만을 눈을 떼지 않고 보고 있자니 나무들의 모습이 참으로 다양함에 놀랐다. 바람결이 쓰다듬는 대로 누워 자란 나무도 있고 햇빛에 이끌리듯 해를 향해 자란 나무가 있는가 하면 뒤틀리거나 꼬였다가 자라난 나무도 있었고 대장군처럼 늠름하게 자란 나무도 있었다. 어떤 나무들은 집을 포근하게 감싸면서 울타리가 되기도 했고 어떤 나무들은 밭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보호막이 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언덕 위 독야청청 기품 있는 나무도 눈에 띄었다. 생긴 건 달라도 나름대로 자신의 역할들을 잘 감당하며 조화롭게 어울려 있었다.
예전에 한국 TV에서 유명한 작가를 모시고 대담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광장>을 쓰신 최인훈 작가가 나온 적이 있었다. 늘 무게 있는 주제만 다루던 분이라 어렵고 고루한 얘기만 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의외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회자는 현재 대중 소설의 가벼움과 소설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얘기하며 이런 세태를 어떻게 생각하시냐고 질문을 했다. 그 분의 작품 분위기로 봐서는 따끔한 일침을 가하리라 생각했었는데 대작가께서는 단 한 문장으로 간단하게 대답하셨다.
“나름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들 하고 계시지요.”
조화로운 사회는 그렇게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생긴 대로 최선을 다하는 사회일 것이다. 늠름하게 쭉 뻗은 나무가 바람에 누운 나무에게 일어나라고 야단쳐 대지 않고 그늘에 웅크리고 앉은 나무에게 햇빛바라기 나무가 햇빛으로 나오라고 몰아세우지 않고 그저 생긴 대로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회 말이다.
교실에서 보는 아이들 모습 뒤로 남과 같아야 한다는, 남만큼 해야 한다는 주변 어른들의 압박을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똑같은 머리 모양을 하고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교과서로 줄 맞춰 앉아 공부를 하며 남보다 나아야 하고 적어도 남과 같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눌려 자라던 우리와는 많이 다르지만 그래도 지금의 아이들에게서도 그런 압박감에 눌린 그늘을 보게 된다.
우리 모두는 남들한테 이기거나 지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 내 몫만큼 즐겁게 살려고 태어났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월든>이라는 책에서 “꼭 사과나무가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장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다 말인가”라고 말했었다.
푸르른 나무의 여린 끝 우듬지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슬렁슬렁 자유로이 있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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