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에 나갔다가 리어카 위에 놓인 석류송이들을 보았다 매우 젊은 아가씨 서넛이서 아, 석류 좀 봐, 하면서 달겨들었다 석류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알갱이들이 민망해 보이기도 했다 리어카 위로 고개를 수그리는 젊은 여자들의 머리타래가 석류알을 몇 개 건드렸다 간지러워 보였다
인사동과 석류는 제법 잘 어울리는 듯했지만, 저 미니스커트들과 석류는 어쩐지 어색하기만 했다 저 젊은 여자들 속에 석류처럼 익은 게 무어 있을까 중얼거리는데 그중에 누가 오이비누를 썼는지 오이 냄새가 확 퍼졌었다 나는 석류 한 송이를 집어들어 안전핀을 뽑았다 하나 둘 셋, 하고 던졌다 수류탄은 조준한 곳에서 정확히 폭발했다 곳곳에 파편이 튀었다 초가을 입구, 인사동 입구는 아수라장이었다
이문재 (1959~) ‘석류’ 전문
“매우 젊은 아가씨 서넛”이 석류 좀 봐 했을 뿐인데, “석류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알갱이들이 민망”해 보인다. 이것은 ‘벌어진 석류’의 이미지가 관능적인 이미지로 굳어져 있기 때문이다. 젊은 아가씨들과는 맞지 않는, 농익은 여인의 이미지. 이러한 인식에 갇혀 자유롭지 못했던 상상력은 한 방에 날아간다. 어떤 아가씨가 풍겼던 오이냄새 덕분이다. 덕분에 민망함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던 화자는 이때의 상황을 수류탄이 터진 것으로 비유한다. 석류의 생김새에서 차용해온, 독특한 발상이 실감나게 전개되고 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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