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웅거리며 구덩이를 파내려가는 포클레인
포클레인 없이는 하관식도 더디다고 품이 많이 든다고 조경책임자가 투덜거린다
나무 허리에 동여맨 밧줄을 놓치지 않으려 강철 손을 번쩍 치켜들고 구덩이로 향하는 포클레인
흙을 꼭 쥐고 있는 나무뿌리가 내려달라 몸부림치며 잔가지를 부러뜨리고
생 이파리를 떨어뜨리다가 그대로 구덩이에 처박힌다
빈 구덩이는 새로운 생을 허락하는 것일까
조경석 사이마다 모여드는 금니의 햇살을 받으며 어색한 자세로 서 있는 나무여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바라보며 밤새 뒤척거리고 크고 헐렁한 바지를 입은 사람처럼 어정쩡하게 주춤거리는 나무여
나뭇잎 냄새가 퍼지는 저물 무렵
빈 구덩이 속,
보드랍게 깎여진 흙의 절벽을 매만져 본다
사람의 목숨 끝을 기다리는 구덩이를 본 적이 있는가
관을 맞을 준비가 되었다고 깊은 바닥을 내보이는 저 고요한 구덩이를……
박순호 ‘구덩이’ 전문
하나는 조경을 위한 삶의 구덩이고, 다른 하나는 관을 묻기 위한 죽음의 자리이다. 그런데도 이 둘의 처지는 크게 다르지 않다. 생이라는 것도 죽음만큼이나 진부하고 서럽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크고 헐렁한 바지를 입은 것처럼 새로운 자리에서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기까지 또 얼마나 어려울 것인가. 그것이 새로운 생이라면 하관되어지는 몸 역시 그곳은 새로운 출발점이다. 삶과 죽음이 대비를 통해서 하나가 되는 현장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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