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사용하던 승욱이 보청기가 혹시 집에 있을까싶어 여기저기를 뒤지다가 눈에 확 들어오는 초록색 노트를 발견했다. 중학교 때부터 쓰던 일기장들 사이에 끼어있던 낡은 초록색노트를 말이다. ‘어? 이게 왜 여기 있지?’ 첫 장에는 1990년 여름, 대입을 준비하면서 친한 친구들 네 명이 돌아가면서 썼던 우정노트이다. 까맣게 잊고 지냈던 고교시절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오른다.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덕분에 노트에는 간간이 예쁜 그림도 그려있고, 혼자보기 아까운 글들도 적혀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방구석에 앉아 키득거리며 추억의 페이지를 넘기고있다. 마치 20년 전으로 돌아간 듯 시간이 멈추어있다. 친구들의 얼굴 표정 하나 하나가 살아서 글 위에 움직이고있다. ‘그랬구나. 우리가 이런 시간도 있었지’ 유치하게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붙여놓고 서로 자기가 임자라고 사연을 빼곡이 적어놓지를 않나, 대입 끝난 뒤 무조건 미팅 10번을 강조해 놓지를 않나, 드라마 스토리를 적어놓고, 남자친구와 싸운 내용도 적어놓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친구들과 의미 있는 추억거리를 만들고자 내가 노트를 사고 내가 글의 시작을 써내려 갔다. 처음에 네 친구가 시작했던 우정노트는 반 아이들까지도 재밌게 돌려보면서 각자 한 줄씩 의미 있는 글들을 남겨두기도 했다. 처음 재밌고 유쾌한 내용과는 다르게 노트의 뒷부분으로 갈수록 마지막 모의고사, 배치고사, 그리고 대입까지 공부, 공부라는 단어가 페이지마다 빠지질 않고 있다. 공부 안 한다고 부모님께 혼나고, 시험성적 나쁘다고 선생님에게 꾸중듣고, 친구들보다 점수 안 나온다고 자존심 팍팍 상하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도 부모님 밑에서 공부하라는 잔소리 들으며, 공부를 강조하던 선생님들 밑에서, 친구들과 공부하던 그 시간들이 너무도 그립다.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한결같이 그렇게 말씀하셨다. 하기 싫은 공부하던 시간이 먼 훗날 가장 그리울 거라고 . 왜 그땐 그 말이 짜증나도록 듣기 싫었는지 모르겠다. 사실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으면서 말이다.
날이 새면 아이들에게 우정노트를 보여줄 생각이다. 우리아이들의 학창시절이 지금과 너무도 다르지만 한가지 같은 건 공부하기 싫어하는 것은 공통적인 것 같다. 엄마의 노트를 보여주며 지금의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인지에 대해 말하고싶다. 그리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거리도 많이 만들라고 말해주고 싶다. 1990년 여름의 이야기를 나눌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다.
김민아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