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가 분꽃들은 노랑 다홍 빨강 색색의 전기가 들어온다고 좋아하였다
울타리 오이 넝쿨은 5촉짜리 노란 오이꽃이나 많이 피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닭장 밑 두꺼비는 찌르르르 푸른 전류가 흐르는 여치나 넙죽넙죽 받아먹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난한 우리 식구들, 늦은 저녁 날벌레 달려드는 전구 아래 둘러앉아 양푼 가득 삶은 감자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해 여름 드디어 장독대 옆 백일홍에도 전기가 들어왔다
이제 꽃이 바람에 꺾이거나 시들거나 하는 걱정은 겨우 덜게 되었다
궂은 날에도 꽃대궁에 스위치를 달아 백일홍을 껐다 켰다 할 수 있게 되었다
송찬호(1959~) ‘옛날 옛적 우리 고향 마을에 처음 전기가 들어올 무렵,’전문
우리 집 꽃도 전기에 밀려 뒷전이던 때가 있었다. 백일홍, 채송화만으로도 충분했던 화단에 가짜 꽃빛을 보태보려고 오빠가 설치했던 꼬마전구들. 어느 비바람 사납던 날 기어이 벼락을 불러들였다. 순식간에 꽃밭을 건너가던 불꽃, 전선 타는 냄새가 지금도 진동을 하는 듯하다. 색색의 꽃들이 모두 꼬마전구인 것을, 오이꽃 노란 등이면 5촉 밝기는 충분히 되는 것을. 사람들이 진짜 꽃밭을 잃어버린 건 전기가 들어오고부터였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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