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꽃이 피고 소낙비가 오고 낙엽이 흩어지고 함박눈이 내렸네
발자국이 발자국에 닿으면
어제 낯선 사람도 오늘은 낯익은 사람이 되네
오래 써 친숙한 말로 인사를 건네면
금세 초록이 되는 마음을
그가 보는 하늘도 내가 보는 하늘도 다 함께 푸르렀네
바람이 옷자락을 흔들면 모두는 내일을 기약하고
밤에는 별이 뜨리라 말하지 않아도 믿었네
집들이 안녕의 문을 닫는 저녁엔
꽃의 말로 안부를 전하고
분홍신 신고 걸어가 닿을 내일이 있다고
마음으로 속삭였네
불 켜진 집들의 마음을 나는 다 아네
오늘 그들의 소망과 내일 그들의 기원을 안고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네
이기철(1943~) ‘사람과 함께 이 길을 걸었네’ 전문
아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든다. 호젓한 산길을 가다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과 길동무가 되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는 모습도 보이고, 사립 훤하게 열어젖힌 채 잠에 빠진 초가집도 보이고, 깜빡거리는 눈으로 밤새도록 그 집 지켜주는 별무리가 보이기도 한다. 사람과 더불어 인정이 살던, 산자락 아래 탯줄처럼 매달려 있는 고향집까지도 훤히 보이게 만드는 시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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