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이 졌다
떨어진 꽃잎은 잊혀졌지만 꽃이 있던 자리는 점점 자라서
아이 울음만큼 자라서
직박구리가 목이 쉬어 떠났다, 가서는
다시 오지 않았다
새가 앉았다 간 자리를 쳐다보아도
아무리 쳐다보아도
꽃잎을 쉬이 잊은 일에 대한 치밀한 반성이나 가책 말고는 달리
설렐만한 일은 없었으므로
살구꽃 사진을 침실에 걸어놓고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새가 떠나지 않았다면
침실의 어두운 불빛 아래가 아니었다면
꽃잎 속에서 어떤 그리움이 무릎 바짝 세우고 나를 내려다보는 줄이나 알았겠나
살구 알이 자라서 드리우는 동그란 그림자 안이 그
처럼 환한 줄 생각이나 했겠나
배홍배(1953~) ‘꽃이 지는 일’ 전문
화려했던 살구꽃은 속절없이 져버리고, 그 슬픔을 대신해서 울어준 것은 직박구리다. 그만큼 아픈 상처였음을 은유하고 있는 것인데, 시적 화자가 한 일이라고는 살구꽃 사진을 침실에 걸어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밖에 없었다 한다. 그러다 살구 알이 둥글게, 환하게 여물어서야 문득 깨닫는다. 새가 있는 동안에는 몰랐던 상처, 어둠이 아니었으면 진정 알지 못했을 그리움을 말이다. 모든 것이 다 떠나가고 철저하게 혼자가 되었을 때서야 보이는, 그 어떤 상처의 세계는 사람들마다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을까?
한혜영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