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닭장 구석구석 내몰리던 닭들, 다시 모이통 앞으로 쇄도하기 전 일제히 목을 뽑아 흔들어대던 대가리, 닭대가리들이 금세 탈, 탈, 탈, 털어낸
닭
삶은 것 먹는다. 오늘 發靷한 친구의 빈자리에 둘러앉아 늙은 계원들은 후룩후룩, 고개를 주억거리며 뜨시게 먹는다.
소주 몇 잔에 이마꼭대기마다 볏이 붉다.
문인수(1945~) ‘닭’ 전문
말복을 향해 무서운 기세로 가고 있는 여름, 본국에서는 한참 닭을 잡을 때다. 방금 전까지 모이를 먹느라 목을 뽑아내고서 흔들어대던, 닭 모가지들이 제거된 닭은 어느 틈에 뜨거운 김을 내뿜으며 상위에 올라 있다. 오늘은 하필 친구의 발인(發靷)이 있던 날. 시인은 둘러앉아 닭을 뜯는 친구들을 슬그머니 둘러본다. 그리고 자신들 역시 닭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소주 몇 잔에 이마꼭대기마다 볏이 붉은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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