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던 사람들이 유럽 여행 시에 영국이 좋은 점은 영어가 통한다는 것이고 단점은 파운드의 가치가 높아 돈이 무척 많이 든다는 것 입니다. 파운드로 적혀 있는 물건이 미국의 달러 값이면 꼭 맞을 격이니 말할 수 없이 비싼 것이지요.
대영 제국으로 세계를 누비고 다닌 적이 있고 지금도 유럽의 중요 도시로 손꼽히는 런던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요리 하면 뭐 기껏해야 로스트비프와 욕셔(Yorkshire) 푸딩(달걀찜 같은 것)이 고작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90년도 중반쯤부터 런던은 야, 용 됐구나! 하고 칭찬만 하게 되었습니다. 뉴욕에도 많은 분점을 갖고 있는 맛있는 샌드위치 집, 프렛따 망제
(Pret a Manger -ready to eat)가 시작한 곳도 바로 런던입니다.
요리가 전문이니, 반드시 해로드(Harrod) 백화점 식품점을 가 봐야 한다고 저에게 추천 하였습니다. 먹음직스런 여러 가지 음식이 진열되어 있고 비싼 값에 아랑곳없이 사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종류가 다른 여러 가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코너를 여기저기 돌아보니 너무나 먹음직스러워 열일 제쳐놓고 그 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하였습니다. 딸은 샤핑 할 돈이 줄어들까 봐서 먹는데 돈 들이는 것을 무척이나 아깝게 생각하며 내키지 않는 표정 이었습니다.
잘 먹고 건강한 것이 가장 경제적인 생활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며 그 집의 유명한 부야베즈(생선 찌게)와 새우요리를 시켰습니다. 과연 유명한 백화점답게 음식도 썩 잘 만들었더군요. 저는 고급이던 평범한 음식이던 잘 먹었을 때 가장 기분이 좋은데요. 보석 같은 귀중품이나 좋은 가구, 옷 같은 것을 최고로 중요시 하는 여자들에 비하면 이거 뭐 너무 단순하지요.저녁에는 런던에 살고 있는 딸의 친구가 인도 요리를 맛볼 곳으로 안내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런던은 인도를 떠나서 가장 맛있는 인도 음식을 맛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고추장 맛보기 힘든 여행 시에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기 위하여 매운 인도 요리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서 선뜻 찬성했습니다. 살라망카로 스페인 말을 배우러 같을 때 만난 친구인데요. 베아트리스는 런던의 은행에서 파견되어 같은 학교에서 스페인 말을 배우던 아이였습니다. 벌써 대학을 졸업한 아이라 그 당시 고등학교 3학년에 진학 하려던 우리 딸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베아트리스가 우리를 안내한 소호(뉴욕의 소호가 이곳의 이름을 딴 것)의 마살라 존(Masala Zone)은 젊은 사람들의 취향에 맡게 현대적으로 잘 꾸며 놓았더군요. 이 집 주인이 처음 고급 인도식 레스토랑인 타마린드(Tamarind)를 열어 무척이나 성공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보다 값이 덜한 레스토랑으로 시작한 곳이 바로 마살라 존 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베아트리스가 시키는 대로 탈리(thali)라는 정식을 주문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반찬이 나오고 메인 디쉬를 하나 고르면 되지요. 한식의 정식처럼 여러 가지를 담아 온 둥근 쟁반을 보니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음식에 먹기도 전에 벌써 군침이 돌았습니다.
반찬 그릇에 담긴 렌틸(녹두 비슷하지만 납작함), 컬리풀라워, 당근을 섞은 것, 카레의 색이 도는 감자, 토마토, 요구르트를 넣은 오이가 양념을 조금씩 달리하여 담겨 나왔습니다. 제가 시킨 메인코스 새우는 카레와 코코넛 양념을 하여 양쌀 밥과 함께 나왔습니다. 딸이 시킨 양고기는 코리안더(coriander) 양념이 되어 나왔습니다. 모두 인도 사람들이 많이 쓰는 향이 약간 짙은 양념입니다. 잘못하면 우리에겐 너무 강한 느낌이 들 수 있거든요. 저는 각 반찬의 맛을 따로 보기 위하여 섞지 않고 따로따로 먹었습니다. 입안에 도는 매운 맞을 느긋이 즐기며 만족한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인도식 빵이라고 할 수 있는 넓적하고 얇은 챠파티(chapati)는 쳐트니(chutney-주로 과일에 양념을 넣고 걸죽하게 만든 것)를 발라 먹었습니다. 양념을 적당히 써서 모든 것이 꿀맛인양 먹었습니다. 제가 수차 얘기 했듯이 어느 나라 음식이던 간에 잘 만들면 다 맛이 있어요.
엄마 걱정 말고 베아트리스와 둘이 하고 싶은 이야기 마음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식당 내부도 돌아보고 기사와 함께 신문사에 제출할 사진도 찍었습니다. 슬쩍 옆에서 흘려들은 것인데요. 아빠한테 매달 빠듯한 용돈타기 진력이 나서 공부 때려치우고 일하고 싶다고 딸이 말했습니다. 무엇을 하던 간에 우선 대학을 마쳐야 하는 것은 기본이라고 베아트리스가 주장 하였습니다. 제가 하는 말은 그냥 스쳐 듣지만 이렇게 친구가 하는 말은 더 효과가 있겠
지요. 딸이 참 좋은 친구를 골랐구나! 하고 생각 했습니다. 독학으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큰 은행에서 열심히 일하는 그 아이는 참 본 받을 만하였습니다.
연한 박하 차를 마시며 온 몸에 도는 훈훈함을 느꼈습니다. 마냥 떠들다가 나오면서 보니 입구에는 기다리는 사람들이 구불구불 줄을 서 있었습니다.
시간 맞추어 우리가 일찍 오길 잘 했구나.엄마, 우리 내일도 이 집에 올까?이크! 우리 딸도 나 닮은 데가 있구나!이번에 런던에 온 것은 사실 제가 결혼 전 삼십대 초부터 알던 콜롬비아 사람인 알폰소네 식구들을 방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가 영국 대사로 있기 때문에 그와 그의 처 그리고 우리 딸과
나이가 비슷한 그집 딸도 다시 만날 겸 온 것이었습니다. 알폰소가 프랑스 대사로 가 있을 때 빠리의 엉발리드 지역에 있는 그의 대사관저에서 묵었으니까 만나 본지가 15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것 입니다. 십년 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런데 그 두 부부는 그런 속담과는 전혀 상관이 없어 보였습니다. 저는 어두운 데서 봐도 현저하게 주름이 늘었는데! 그 두 사람은 옛날이나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말 반가웠습니다.
전 영국 수상인 마가렛 대처 여사도 사는 동네인데 동네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뒷골목으로 입구가 나 있는 손님 숙소로 우리를 안내 했습니다. 한 두 번 정도 식사를 같이 하고 우리가 마음대로 들락날락 할 수 있으니 사실 그게 더 편하더군요. 다음날 점심을 같이 하면서 지난 얘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흐른 것 같지 않고 바로 얼마 전에 만났던 것 같았습니다. 좋은 친구는 그래서 좋은 것! 오랫동안 안 만났어도 바로 엊그제 만났던 것처럼 스스럼이 없이 편안했습니다. 더군다나 딸과는 그 빠른 스페인 말로 (저처럼 느린 사람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 재잘댈 수 있으니 아주 편하게 느끼더군요.
그런 공직에 있으면 월급은 얼마인지 몰라도 집에 두고 있는 요리사 (제가 제일 부러운 것), 기사, 집안 일 돌보는 사람 등이 있으니 참 너무나 편할 것 같았습니다. 반면에 항상 남과 같이 살아야 하니 불편한 점도 있겠지요. 관저의 요리사가 지진 연어에 야채와 서양식 밥을 곁들여 내왔습니다. 연어가 간도 맞고 맛은 있는데 너무 익어 좀 뻣뻣 하였습니다. 참 이거 조금만 덜 익히면 너무나 연하고 맛이 있을 텐데! 연어의 속은 익은 듯 만듯해야 생선이 아주 연하거든요. 한번 그렇게 익힌 맛을 알게 되면 다음에 레스토랑에 가서 연어를 너무 익히지 말라는 오만한 주문을 하기 일쑤이지요. 그런데 오늘의 경우, 그런 것 물어 보지도 않는데 얘기 해 줄 수도 없고. 요리 가르친답시고 뻐기는 것 같지 않아요? 참 아깝다고 생각하며 점심을 먹었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는 참 허식이 없고 너무나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 되었습니다. 딸에게 다음에 런던에 오면 자기 관저로 친구들을 모두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한번 꼬옥 에비앙에 오라고 신신 당부 하고 떠났습니다. 그는 프랑스, 미국, 영국 대사를 다 지냈으니 다음에는 어느 나라로 파견이 될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지만 그에게 그런 야망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기사를 시키지 않고 저의 가방을 성큼 들고 우리와 함께 역으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순박하였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사적지 가운데 하나인 타워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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