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물결도 패거릴 지어 몰려다니면
죽음의 커다란 입이 되지요
번쩍이는 죽음의 이빨들이 되지요
석삼년에 한 번쯤 人肉을 삼키던 이 저수지는
백 년간 서너 차례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죽음의 말라붙은 입속을 샅샅이 파헤쳐 보았지만
사라진 몸이 나타난 적 없습니다
살덩이를 뼈째로 녹이며 큰 물결들이
깊은 곳에서 거칠게 찢어선 삼켰겠지요
물 빠진 저수지 바닥엔 흙먼지들이 쥐불처럼 몰려다니고
굶주린 바람이 서로 부딪쳐 으르렁대고 있어요
물을 호령하여 사람을 빨아 당기던 그놈들이요.
구름처럼 얼굴 없는 黑幕입니다
어서 새 옷을 입혀달라고 악다구니하는 아이처럼
골짜기 가득 황량한 아가리를 벌리고
벌거벗은 괴수들이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십 년 만에 또 한 번 대청소를 하고 있어요
이영광(1967~) ‘마른 저수지’ 전문
십년 만에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냈을 때 시인은 그곳서 죽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동시에 저수지는 한 마리 커다란 괴수가 되어버린다. 물결이라는 것이 때에 따라선 얼마나 사나운 이빨이 되는 것인지.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의 몸이 흔적도 없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 한량없이 부드러운 것이 물이겠으나 그것을 사납게 만드는 것은 바람이다. 어쩌면 세상이라는 곳 전체가 이러한 저수지는 아닐까? 한번쯤 의심을 해보게 만드는 시다.
한혜영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