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용은, 우즈 두 번 잡은 ‘호랑이 사냥꾼’
제91회 PGA챔피언십 3라운드가 끝난 뒤 선두 타이거 우즈에 2타차 공동 2위에 오른 양용은과 파드렉 해링턴 가운데 양용은이 우즈와 함께 챔피언조로 파이널 라운드를 치르게 되자 야후 스포츠의 한 칼럼리스트는 해링턴이 눈에 보이지 않는 행운을 잡았다고 관측했다. 마지막 날 선두로 출발한 14개 메이저대회에서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우승컵을 치켜든 우즈와 마지막 날 챔피언조에서 부담스런 맞대결을 하느니 한 홀 앞서가며 경기하는 것이 해링턴에게 득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이 칼럼을 읽어보면 금방 눈에 들어오는 두 가지 시각이 있다. 첫째는 우즈는 정면대결로 누가 꺾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래도 디펜딩 챔피언 해링턴은 한 가닥 희망을 걸어볼 수 있는 선수인 반면 양용은은 우즈의 위협으로 고려대상도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올해 혼다클래식에서 우승한 당당한 투어 챔피언 중 한 명임에도 불구, 양용은의 위치는 우즈는커녕 해링턴과도 비교될 수 없는 레벨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칼럼리스트가 간과한 사실은 양용은이 이미 한 차례 우즈를 잡은 적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난 2006년 중국 상하이에서 벌어진 HSBC 챔피언스에서 양용은은 당시 파죽의 6연승 가도를 질주하던 우즈를 2타차로 누르고 우승, 세계 골프계에 충격파를 던졌다. 물론 세계 골프계는 그 이변을 어쩌다 한 번 일어난 돌연변이성으로 치부했고 양용은이 이후 PGA투어에 진출해 별다른 성적을 올리지 못하면서 그 평가는 틀리지 않은 듯 했다.
하지만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말처럼 한 번 호랑이를 잡아본 사람은 언제라도 ‘호랑이 사냥꾼’이 될 잠재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양용은은 그것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입증해 보였다. 물론 이날 우즈의 퍼팅이 잇달아 홀컵을 외면했고 양용은은 14번홀에서 이글 칩샷이 홀컵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두어차례 OB위기를 모면하는 등 승운이 따라줬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우즈를 상대로 운을 승리로 연결시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일이다.
최종라운드에서 양용은은 전혀 주눅 든 기미가 느껴지지 않는 거침없는 플레이로 오히려 기 싸움에서 우즈를 압도해 나갔다. 그동안의 메이저 대회 경험에서 자신이 굳이 앞으로 치고나가지 않더라도 자신과 맞서는 경쟁자들이 긴장과 초조감에 사로잡혀 제풀에 나가떨어지는 것을 알고 있는 우즈는 3라운드부터 모험을 피하고 그린에 볼을 올려 파를 잡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보수적인 작전을 유지했는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자세로 공격 일변도의 플레이를 한 양용은에겐 그 것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피 말리는 종반 마지막 스트레치에서도 양용은은 티박스에서 연습스윙 한 번 하지 않고 바로 드라이버를 휘둘러 관전자들을 놀라게 했다. 반면 계속해서 퍼팅이 홀컵을 살짝 스쳐지나가는 것을 지켜본 우즈의 가슴에선 점점 평정심이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결국은 ‘떼놓은 당상’으로 믿었던 통산 15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놓치는 믿기지 않는 패배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이날 승리로 양용은은 이제 확실한 ‘호랑이 사냥꾼’으로 명성을 날리게 됐다. AFP통신은 양용은이 우즈를 2번이나 꺾은 것을 두고 그가 우즈의 ‘아킬레스건’이 됐다며 천적관계를 부각시켰다. 양용은의 ‘호랑이 사냥’은 올 세계 골프계 최고의 스토리가 됐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김동우 기자>
자신의 골프백을 치켜들고 환호하는 양용은.
15번째 메이저 우승컵을 눈앞에 두고 돌아서는 타이거 우즈의 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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