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굴이 된다면
눈 내린 깊은 산중
곰이나 호랑이로 치면 허리나 겨드랑이쯤
작지도 크지도 않게 자리 잡은 굴이 된다면
먼 옛날 티벳의 승려
차마 깨치지 못한 욕망의 칼바람소리
하얗게 계곡을 내리칠 때
쫓기던 산짐승들 불현듯
뛰어들어도 좋을 방이 된다면
바위 같이 거친 등에 이끼꽃 피어나
춥고 배고픈 것들 앉기에 좋고
눈썹위에 눈발 커튼처럼 흩날리는
산중의 주인 없는 여관방이 된다면
꽃이며 사슴들
갇힌 채 한 천 년 뛰어노는
뭇 여인의 자궁같이 어둡고
고요한 입술을 열어
맞이하리, 그대
늙고 지치면 돌아올 거라던
산의 아들
임혜신 ‘동굴’ 전문
여자들은 전생부터 품는 연습만 했을 것이다. 몇 천 년, 혹은 몇 백 년 착실하게 품는 연습만 했을, 여자들은 아예 동굴 하나씩을 가지고 이승으로 왔을 것이다. 품는 데는 이골이 난, 여자들은 춥고 배고프고 상처 입고 쫓기는 것들을 일단 감당부터 하고 보는 것이다. “늙고 지치면 돌아올 거라던 산의 아들”을 기다리는 품은 또한 얼마나 넉넉할 것인가. 그 커다란 산 하나를 품기 위해서 늘 비워둔 채 기다렸을 가슴을 가늠해본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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