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일어난 산이 거울을 보네
못물 가득한 논에 엎디어
제 얼굴을 보네
작년 봄 뻐꾸기 울 때 보고 지금 보네.
그새,
어떤 꽃은 아주 지고
어떤 새는 멀리 떠났지,
어떤 나무는 눕고
어떤 바위는 저만치 굴러가버렸지,
어떤 목숨은 죽어서 이리로 오고
어떤 짐승은 죽어서 내려갔지.
민박집 뒷산이 겨울을 보며 우네,
작년 얼굴이 아니네
이 얼굴은 아니라네
고개를 흔들며 우네.
장화 한 짝과 막걸리 병과 두꺼비가 보이는
논두렁에서 산이 우네,
식전부터 우네.
건너편 솔숲에서 자고 나온
백로 한 마리가 무심코 논에 들어섰다가
죽은 듯이 멈춰서있네.
산수문 흐려진 거울 복판에
서 있네.
윤제림(1959~) ‘산수문경(山水紋鏡)’ 전문
다 떠나고, 제 자리를 지키는 것은 산뿐이다. 작년 봄 뻐꾸기 울 때 보고 논물에 제 얼굴 비춰보는 것이 처음이니, 고작해야 일 년 사이의 변화가 이러하다. 꽃은 지고, 새는 멀리 떠나고, 나무는 눕고, 바위는 굴러가버리고… 찾아오는 것이라고는 죽은 목숨밖에는 없다. 빠른 속도로 피폐하게 변해가는 농촌의 현실, 시인은 “장화 한 짝과 막걸리 병과 두꺼비가 보이는/ 논두렁에서 산이 우”는 것으로 그것에 대한 아픔을 진솔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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