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창 뒤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노랫소리에 맞춰 가방을 멘 아이들은 총총히 학교로 가고
자동차들은 신호에 맞춰 멈춰 섰다 움직이길 반복하며 연달아 차도를 달린다
멀리서 보면 줄지어 제 길을 찾아가고 있는 헤드라이트마저 정겹고
위험은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소식일 뿐이다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보면
부엌의 여자들마저 얼마나 순해 보이는가
음식을 위해 태어난 자기들의 운명에 순응하듯
묵묵히 그러나 일인극 배우처럼 당차게 부엌을 지키는 여자들
유리창 뒤에서 보는 풍경이 훨씬 아름답고 평화로운데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그럼에도 내가 질질 끌려가고 있는 저 바깥의 힘이다
그럴 때면 나는 인공호흡기를 뗀 식물인간처럼 호흡이 가빠진다
일러두건대 나는 유리창의 詩人, 유리창의 囚人인 것이다
유리창이 부서져 내리는 날 그 잘디잔 파편들과 함께
내 영혼도 산산이 바닥에 떨어져 내릴 것이다
그러니 삶의 투박하고 거친 손들이여 제발
나를 밖으로 꺼내려 들지 말라
나는 유리창에 고요히 담긴 자이다
이선영(1964~) ‘유리창’ 전문
온실이라고 하면 당연히 유리를 떠올리고, 그곳은 따뜻하고 안전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곱게 자란 사람을 ‘온실 속의 화초’에 비유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시에 등장하는 유리창 역시 세상을 이등분하는 도구로 쓰이고 있다. 안전지대는 안쪽이고 위험지대는 바깥이다. 그러기에 자신을 끌어내려 하는 바깥의 힘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세상 유혹에 충동적이지 않기를, 언제까지나 온실에 안주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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