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찬거리로 청어를 샀습니다.
등줄기가 하도 시퍼래서
하늘을 도려낸 것 같았습니다.
철벅철벅 물소리도 싱싱합니다.
정약전(丁若銓)은 어보(魚譜)에 무어라고 적었던가요.
청어를 앞에 놓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르긴 해도 누운 자세가
그대로 눈빛 고운 수평선이란 말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문득 그 위 하늘에 가 닿았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이미 청어가 되어 헤엄쳐 간 정약전 같은 사람들,
잠시 생각하는 만큼 저녁이 늦어지겠지요.
그래서 하늘에 푸른 물소리로 먼저 등불을 켭니다.
바다가 헤엄쳐 내 집에 와 있습니다.
김윤식(1947~) ‘청어의 저녁’ 전문
청어 한 마리를 놓고 물소리를 듣는 시인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정약전의 말을 떠올리고, 수평선을 보아낼 수 있는 시인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청어에서 헤엄쳐 가는 정약전을 보아내다가, 청어가 되어보기도 하는, 저녁 찬거리로 청어 한 마리 사들고 들어와 차마 칼 내리치지 못하고 청어의 시퍼런 등줄기만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는, 시인의 저녁은 참으로 푸르기도 하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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