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내 고향에는 벌써 귀성객들이 걸음을 재촉하여 서울역으로, 고속터미널로 달려갈 것이다. 차들은 꼬리를 물고 서울을 빠져나갈 것이다. 어쩌면 나는 가을 길이 있기나 한 걸까?
내 고향에는 부모님을 성묘할 자리가 없어진지 몇 해나 되었다.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던 차인데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고 땅주인이 이장에게 간곡히 부탁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해서 두 분을 교회가 세운 곳에 뿌려야 했다.
지금은 고향을 잃어버린 것처럼 서운하다. 코스모스가 키 크게 자라 지나가는 나의 얼굴을 간질이던 길가 부모님께선 얼마나 덧없이 떠나간 자식을 기다리셨단 말일까. 어머님은 장성한 자식이 장가를 가지 아니하자 참다 참다 일생 처음으로 나의 뺨을 때리시기 까지 하셨는데, 지금도 그 따가웠던 손길을 나는 간직하고 있다.
말이 없으신 아버님은 약주만 하시면 누님들을 줄로 세우시고 노래를 시키고 그렇게 좋아 하셨는데 나는 한 번도 아버님을 위해 노래를 받친 적이 없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갑자기 야구 시합을 보자고 서울운동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셔서 처음이자 마지막인 아버지와의 외출이 되었다. 부모님께 효도라곤 해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부모님의 생신도 돌아가신 계절도 가을인지라 나는 마음이 편찮다. 아니 코스모스가 핀 것만 봐도 죄스럽다.
깜깜한 밤을 걸어본다. 커져가는 달이 구름을 재치고 길가를 대낮처럼 밝힌다. 발길이 무겁다. 벌레들 소리가 귀를 멍하게 한다. 부모님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아직 나무들은 꿈쩍도 하지 아니하고 잎새는 단단히 매달려 있다.
생각해보면 몇일래로 천천히 가을은 느릿느릿 걸음마를 시작 할 것이다. 계면쩍게도 잎새는 홍조를 띨 것이고 마지못해 나무를 떠나 땅으로 뒹굴 것이다. 나무는 점점 겉옷을 벗고 죽은 듯 겨울잠을 잘 것이다. 아니 일단은 죽을 것이라고 해야 한다.
인생도 그런 것일까? 일단은 죽어가는 것일까? 나무처럼. 그래도 하늘은 끝없이 푸르고 때를 맞춰 태양은 떠오르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반복한다면 우리는?
내년에는 코스모스를 반드시 심어야겠다. 어째선지 부모님의 분신을 뿌리다가 신발에 묻혀온 터라 내가 걷는 동안에는 부모님이 내 곁에 있구나 생각하자. 어머님 아버님 가을 길은 멀지요? 저에게도 가을로 가는 길은 멀기만 합니다.
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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