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을 잘 안다는 사람에게
설악이 가장 아름다운 때가 언제냐고 묻자
몸을 불리던 폭포 소리가 수척해지고
이파리 가장자리가 고요히 붉어지는
여을이라고 했지요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사이
여을
가만 더듬어 보니
골짜기가 서늘히 깊어지는 때도
여을
산사나무 열매가 몰래 붉어지고
당신에게 가는 길 모롱이
여뀌풀숲에서 풀벌레가 우는 때도
여을
눈매 가득 강물 소리를 담아 나르는
새들의 날갯짓이 분주한 아침
등 뒤에서 불어온 바람이
억새를 켜고 지나 한바탕 허공의 현을 울리는
아, 여을이지요
남유정 ‘여을’ 전문
‘여을’이라는 말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처음엔 ‘여울’의 오타인 줄 알았으나 ‘여을’이 맞다. ‘여을’은 고요하면서도 서럽고, 부드러우면서도 아픈 여운을 남긴다. 폭포소리가 수척해지기 시작할 때, 이파리 가장자리가 고요히 붉어지는 때, 풀벌레 울고, 바람이 억새를 켜기도 하는 이때가 ‘여을’이라면 여기에 꼭 어울리는 사람이 있다. 조금만 큰소리로 불러도 울음 터트릴 것만 같은, 이제 막 갱년기에 접어든 여인을 ‘여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한혜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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