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落葉)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謙虛)한 모국어(母國語)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肥沃)한
시간(時間)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百合)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
김현승(1913 - 1975) ‘가을의 기도’전문
만일 이 시가 앞 세연으로 끝났다면, 기도하는 삶, 사랑하는 시간을 달라고 기도하는, 그저 그런 평범한 기도문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 시를 살리고 있는 부분은 마지막 연이다. 마지막 행에 이르러, 기도의 주체는 하얀 날개를 가진 천사 같은 이가 아니라 세파를 헤쳐 온 검은 새 한 마리가 된다. 그 때 화자의 기도가 우리 모두의 고백문으로 확장되면서 이 시는 비로소 보편성을 획득한다. 이 가을, 마른 나뭇가지에 다다른 우리를 기도하게 하소서. 하루하루 ‘이아침의 시’를 겸허한 모국어로 채워 주소서.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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