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영국문학과 미술에서 가장 독창적인 시인이자 화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에게 호기심을 갖게 된 것은 60년대 최고의 밴드 중 하나인 도어즈의 리드싱어 짐 모리슨 때문이었다. 도발적 감수성과 허무가 공존했던 1960년대 시대정신이 낳은 예술가인 짐 모리슨은 음악가이기보다는 시인이고 싶어 했는데 특히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를 좋아하여 데뷔 앨범의 노래에도 그의 시 구절을 인용하였으며 자신의 밴드이름인 도어즈(doors)도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구절 중 “지각의 문들이 깨끗이 닦이면 모든 것이 무한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If the doors of perception were cleansed, all things would appear infinite-)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흔히 영국의 낭만주의 시대를 연 시인이자 화가이며, 오늘날에 와서는 가장 중요한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살아 있는 동안은 70평생을 가난하게 지내다 이름 없는 예술가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그의 작품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은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시대를 앞서 세상을 바라보았고,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동시대의 사람들에게는 큰 의미를 주지 못했을 것이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잊힌 채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했던 그가 20세기 들어서 짐 모리슨뿐 아니라 심리학자 칼 융을 비롯 비트 제너레이션의 대표적 시인 앨런 긴스버그, 반전가수 밥 딜런 등 특히 기성문화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반체제문화의 주역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은 그의 상상력이 보여주는 세계가 작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보다는 오늘날에 더욱 근접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그의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역동적 사고와 18세기 자신이 살던 시대 속의 관습이나 종교, 이성이 만들어낸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찾고자 하는 그의 통찰이 20세기 들어 베트남 전쟁, 흑인 인권문제, 페미니즘 등 이데올로기의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세상의 변화와 혁명을 꿈꾸던 시대에 그를 재평가 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그의 살아생전에는 시인이라기보다는 화가 혹은 판화가로 더 알려져 있었는데 그의 그림 역시 신비롭고 수수께끼 같은 상징성, 파격적인 화풍 때문에 동시대 미술계의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했으나 바로 그러한 점들 때문에 현재 유럽 대륙과는 차별되는 영국 미술의 독특한 흐름을 예고한 가장 위대한 작가로 재평가되고 있으니 그의 시대를 앞선 감각과 통찰력이 놀라울 뿐이다.
영어로 쓰인 가장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그의 많은 시들 중에서 그가 느끼는 세계가 무엇인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인상 깊은 시가 바로 뛰어난 상상력과 감성으로 표출해낸 ‘순수의 전조’가 아닐까 한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다/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보라/ 로 시작되는 이 간결하고 함축적인 단어들로 이루어진 시는 그가 남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관조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게 해준다.
가끔 좁은 껍질 속에 갇힌 듯 생활의 중압이 느껴질 때 읽어보는 그의 시들은 무언가 일격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듯 신선하며, 그의 신비로운 그림들은 상상력에 자극과 각성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그리고 그것이 윌리엄 블레이크를 포함한 위대한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주는 사실적인 힘임을 실감하게 된다.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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