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서도 외국 영화 보는 것을 참 좋아했다.
그 당시에는 행복하게 막을 내리는 한국영화를 보는 것보다 여운이 흐르는 그런 외국 영화를 더 좋아했다.
예를 들면 가장 아끼는 사람이 위기에 몰릴 때 고전하며 생을 마감하는 그런 안타까운 장면을 보면서 그래도 영화니까 그 사람만큼은 살아나는 그런 묘미를 기대하며 아쉬움을 갖는 영화랄까. 한국 영화를 떠나서 외국 영화도 좋아했다는 뜻이다.
요즘에 두드러진 현상으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퓨전’이라는 단어다. 그런데 요즘 한국 텔레비전을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퓨전 요리를 보면서 이민의 삶에서 옭아매고 정체했던 편견을 깨는 새로운 사실을 어느 순간 알게 됐다. 육류에 어류가 가미된다던가 한 가지 나물무침에서 다양한 소스가 첨가되어 새로운 맛을 낸다거나, 그래서 다양한 종류의 음식이 생성되는 흐름을 직시할 수 있다.
어느 한정된 모습을 말하는 것이 아닌, 또는 퓨전이라는 단어와 관계없이, 한국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베트남 아가씨와 한국 청년이 결혼하듯 타민족과 어우러진 모습을 보면서 뭔지 모를 뇌리에 박힌 틀이 깨지면서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현상을 직감하게도 된다.
그런 와중에 이번 한미문화예술재단 주최 ‘워싱턴 한미 문화예술 축제’를 관람하고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퓨전 음악이라고 해야 하나.
6일 메릴랜드 대학 콘서트 홀에서 열린 워싱턴 한미 문화예술 축제 공연은 홀을 가득 메운 가운데 펼쳐진 전통적인 우리가락과 현대적 감각의 음악이 어우러진 감명 깊은 공연이었다.
또한 십장생도 배경의 한국적 멋을 한껏 더해주는 가운데 궁중 패션을 관람하니 마치 과거 조선시대를 걷고 있는 듯하여 우리 역사의 편린을 되돌리는 시간이 되기도 했으며 이민의 삶에서 접하는 독특한 프로그램에 감사하고 감명 받는 좋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전통적인 우리가락의 멋과 현대의 음률이 만나는 새로운 음악이 어우러져 들려주었던,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 칭하고 싶을 정도로 뭔가 모를 희망을 향하게 하는 여유로움의 여운을 남게 했다.
잔잔히 흐르는 피아노 선율에 박진감 넘치는 북소리가 용기와 희망을 향할 수 있는 모던함을, 때로는 재즈풍의 발랄한 피아노와 드럼의 혼합된 음률의 조화로움은 참가한 한인과 미국인들의 가슴을 소통하듯 무언의 인간미를 형성하듯 따뜻한 시간이었다.
거대한 그랜드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내며 꽹가리, 징, 장구, 북의 화음에 드럼이 가미된 음악이 갖는 예술성이 돋보인 참으로 아름다운 시간 동안 때로는 함께 박수 치며 하나가 되는 한미 축제가 주는 예술혼을 만끽하는 시간이었다.
마치 손목뼈가 빠진 듯한 부드러운 손이 그려내며 피아노 건반 위를 날으는 기교는 물론이거니와 드럼과 피아노가 어우러진 음률은 음악의 멋진 진수를 터득하는 순간이었으며, 물방울 구르듯 굴러가는 피아노 음과 두드려 치는 타악의 음률이 내는 묘한 어우러짐은 침샘에서 새롭게 솟아나는 상쾌한 침 물처럼, 신선하고 조화로웠다.
그렇게 두드리고 치며 우리의 가슴을 흔들었던 전통 가락에 맞춰 새로운 멋을 냈던 퓨전 음악에 매료되는 시간이었다.
주최 측과 주관한 단체와 후원 단체 개인 등 모두에게 이런 좋은 시간을 주심에 감사드리며 특히 우리 가락을 연주한 ‘몰개’ 그룹과 판소리, 프리 뮤직 그룹 그리고 십장생도 화백님, 궁중 패션 디자이너님 등 모든 출연진들께 함께 했던 관객인 한 사람으로 감사드린다.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