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겨울이면 무를 썰어 말리셨다
해 좋을 땐 마당에 마루에 소쿠리 가득
궂은 날엔 방 안 가득 무 향내가 났다
우리도 따순 데를 골라 호박씨를 늘어놓았다
실겅엔 주렁주렁 메주 뜨는 냄새 쿰쿰하고
윗목에선 콩나물이 쑥쑥 자라고
아랫목 술독엔 향기로운 술이 익어가고 있었다
설을 앞두고 어머니는 조청에 버무린
쌀 콩 깨 강정을 한 방 가득 펼쳤다
문풍지엔 바람 쌩쌩 불고 문고리는 쩍쩍 얼고
아궁이엔 지긋한 장작불
등이 뜨거워 자반처럼 이리저리 몸을 뒤집으며
우리는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갔다
그런 온돌방에서 여물게 자란 아이들은
어느 먼 날 장마처럼 젖은 생을 만나도
아침 나팔꽃처럼 금세 활짝 피어나곤 한다
- 조향미 (1961 - ) ‘온돌방’ 부분
이 시를 미국에서 자란 한인 2세들이 읽는다면 아무 감흥이 없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뜨겁던 온돌방에 대한 추억을 가진 한인 1세들은 지독한 그리움과 행복한 마음 없이 이 시를 읽지는 못할 것이다. 온돌방은 문고리가 쩍쩍 달라붙는 추위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노릇노릇 토실토실 익어갈 수 있게 해준 고향이자, 할머니와 어머니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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