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벽에 똥칠하기 전에 어서 가야 한다고
말끝 흐리시는 친정어머니
열세 평 영구 임대 아파트
칠 갈라진 옥색 문갑 위에
경비실 황영감이 따다 준
늙은, 호박 한 덩이 펑퍼짐히 앉아 있다
순금 같은 풍채 놀랍도록 당당하다
참, 눈치도 없다
손 세실리아 (1963 - ) ‘늙은 호박’ 전문
똥칠하기 전에 어서 가야 한다고 엄살 부리는 친정어머니로부터 시작해서 임대 아파트, 칠 갈라진 문갑, 경비실 황 영감, 늙은 호박으로 이어진다. 이 소재들은 언뜻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톱니바퀴들처럼 서로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치밀한 계산 아래, 조금은 불경스럽고 조금은 눈물겹기도 하지만, 시인은 꽤나 재미난 이야기를 독자들의 상상력을 통해 전개시킨다. 황 영감과 어머니. 어딘지 수상하다. 순금 같은 호박의 풍채를 보니 어머니는 백 년도 더 사시겠다. 다 말하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시의 묘미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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