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이탈리아가 맞붙었다. 일진일퇴. 좀처럼 열리지 않을 것 같던 골문이 마침내 열렸다. 북한 박두익의 한 방이 대세를 결정지었다. 북한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이탈리아가 뒤집혔다. 축구팬들은 물론이고 국민들도 큰 충격에 빠져들었다.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의 해프닝이다. 당시 박정희 정부는 더 큰 충격을 받았을지 모른다. 그 때만 해도 북한의 경제사정은 남한을 앞질러 북한은 이를 체제우월성으로 포장해 선전선동을 하던 때였다. 그러니 그 충격이 보통 큰 게 아니었던 것이다.
그 충격 때문이었던가. 이후 박정희 정부는 ‘축구 근대화’를 국가사업의 차원으로 끌어 올린다. 그 사업을 떠맡고 나선 게 정중앙정보부였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 한다’-중앙정보부의 모토에서 따온 ‘양지’(陽地)팀은 1967년 2월 그렇게 탄생했다.
그 무렵 전해지는 에피소드로 이런 게 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본선 진출을 놓고 지역예선전에서 한국은 숙적 일본과 경기를 치르게 됐다. 1969년 서울에서 열린 그 한일전에서 양지팀은 전반에 두 골을 먼저 넣었다.
이윽고 치러진 후반전. 한국선수들은 제대로 뛰지 못했다. 결국 두골을 내줬다. 무승부로 경기를 끝내자 이 경기를 관람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옆에 있던 김형욱 정보부장에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우리 선수들이 제대로 먹지 못한 모양이야.”
대통령의 언짢은 이 한 마디에 김 정보부장은 그 날로 양지팀 선수들에게 하루 세끼 갈비를 먹이라고 특명을 내렸다. 당시로는 갈비는 특식 중의 특식이었으니 상당한 특혜가 주어졌던 셈이다.
그리고 40년의 세월이 흘렀다. 축구의 본산지 유럽에서 계속 낭보가 날아든다. 박주영이 한 게임에서 잇달아 두 골을 넣었다.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강호 아스날을 상대로 한 방을 터뜨렸다.
게다가 이청용, 기성용의 활약상이 매일 같이 전해진다. 한국 출신의 새내기들이 축구 종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중앙무대를 종횡무진 휘젓고 다닌다는 소식이다. 40여 년 전 양지팀이 탄생할 때와 비교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도 그런 금석지감이 없다.
상당히 고무적인 뉴스다. 유럽에서 날아오는 해외파들의 활약상은 국내 선수들에게 자극제가 된다. 선의의 경쟁을 유발할 수 있다. 이제 120여일 앞으로 다가온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의 좋은 성적과 직결된다는 점에서이다.
박지성-박주영-이청용-기성용은 어느덧 한국축구의 중심 라인을 형성하고 있다. 4강 신화를 이룩한 서울 월드컵 이후 완전한 세대교체를 이룩한 것이다. 이들이 중원과 최전방의 핵을 이룬 한국 팀. 생각만 해도 올해 월드컵 전망은 한없이 밝아지고 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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