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미국과 맞먹는 강대국으로 떠오를 것을 낙관하던 시절이 있었다. 1999년 유로화가 출범하고 2002년부터는 유럽 16개국 3억3,000만명이 이를 직접 사용하면서 ‘유럽 합중국’의 출현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출발 초기에는 1 유로 가치가 80센트까지 떨어졌지만 유럽 경제 통합의 효과가 나타나면서 1달러60센트까지 치솟았고 이와 함께 유럽인들의 콧대도 높아졌다. 미국 촌 동네까지 유럽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지만 정작 미국인들은 유럽 물가가 너무 비싸 유럽 구경하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겉으로는 합쳐진 것처럼 보이는 유럽이지만 유럽 대륙에는 남북과 동서에 걸쳐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가르는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다. 미국과 멕시코 수준은 아니지만 영국, 프랑스, 독일, 스칸디나비아 등 북서쪽의 부국과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동구권 등 남동쪽 빈국의 차이는 현저하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같은 나라인데도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북쪽과 로마 아래 남쪽의 수준 차가 너무 나 한 나라로 보기 힘들 정도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네 나라는 그 머리글자를 따 ‘유럽의 돼지’(PIGS)라는 불명예스런 별명을 갖고 있다.
이들 돼지들이 미국발 금융 위기를 간신히 벗어나 안정을 되찾고 있는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지난 주 다우존스 산업 지수는 하루에만 3% 가까이 추락, 작년 4월 이후 최대 폭으로 떨어졌으며 유로화는 달러 대비 8개월래 최저를 기록했다. 모두 이들 나라의 재정 악화로 인한 국가 부도 위기 때문이다. 이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는 조직적으로 정부 통계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리스가 유로 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로 미미한 편이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는 것은 큰일은 항상 작은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1930년대의 세계 대공황도 오스트리아의 한 은행이 망하면서 촉발됐고 제1차 대전도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의 과격한 행동이 발단이 됐다.
투자가들이 그리스를 비롯한 ‘유럽 돼지들’에 대한 신뢰를 잃고 이들 채권을 투매하기 시작하면 이들의 수익률은 치솟게 되고 이는 유로 존 전체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는 다시 아직도 취약한 상태인 세계 금융시장을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이번 주 들어 시장은 안정세를 되찾고 있다. 지난 번 IMF가 아이슬란드와 헝가리, 라트비아를 구제한 것처럼 이번에도 그리스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유럽의 소국이 어떻게 세계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지 이번 사태가 분명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세계화와 함께 ‘세계는 하나’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현실임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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