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후 퇴원하여 집에서 쉬면서 친정엄마께 전화를 했다. 경과가 좋고 무사하다는 데도 말끝마다 “불쌍한 것, 불쌍한 것” 하신다. 태평양을 사이에 둔 거리를 넘어 엄마의 염려와 안타까움, 눈물이 다 전해온다. 실은 암에 걸린 엄마가 나보다 훨씬 아픈 상태인데 자식걱정을 하시는 어머니. 그게 부모의 마음일 것이다.
오랜 친구는 병원으로 집으로 온 식구가 출근을 했다. 자기도 낮엔 풀타임 일을 하면서, 저녁엔 우리 집의 부엌일을 해주러 오는 것이다. 그녀가 다녀간 부엌은 광채가 난다. 쓸고 닦는 손끝이 야무지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을 넘어, 다 큰 우리 아들에겐 엄마 잘 보살피라며 용돈까지 주었다니 ‘세상에 이런 일’ 이다.
나를 아껴주는 선생님도 전화를 하셔서는 “불쌍해서 어쩔거나. 어쩔거나”를 연발하신다. 죽이며 국이며 아프지 않은 식구들의 반찬까지 무한정 제공하신다. 아픈 내 덕에 남편과 아이가 음식 호강을 한다.
예전의 직장동료였던 미세스 박은 우연히 집에 들러서는 수술로 초췌해진 나를 보더니 아이처럼 엉엉 운다. 무슨 일이라도 났으면 영영 못 봤을 거 아니냐며, 작은이가 덩치 큰 나를 안고 운다.
동료 문인이나, 교우, 친지들의 측은한 눈길이나 진심으로 근심하는 전화나 카드, 격려의 구호품(?)을 받을 때마다 나도 덩달아 눈시울이 뜨겁고 가슴이 더워진다.
나는 언제 그런 마음과 시선으로 남을 대하고 바라본 적이 있는지 머리에 숯불 얹은 듯 부끄러워졌다. 그랬다. 남을 진정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었다. 성경에 있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그 마음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불가의 측은지심도 같은 마음이 아닐까? 사랑은 나보다는 상대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곤경에 빠진 남을 위하는 마음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라면 나는 과연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인가?
여태껏 살면서 되도록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했다. 나로 인해 남이 불편할까봐 전전긍긍하며 살았다. 한번 만든 약속은 지키려고 노력했고 남이 보건 안 보건 질서를 지키며 살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살 것이다.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살겠다는 삶의 모토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을 터이다. 다만 공동체인 사회의 일원으로 최소한의 자격을 지키며 산 것일 뿐, 그 안에는 손해를 끼치지도 손해를 보지도 않겠다는 지극한 이기심이 들어있었다.
수술한 것이 다 회복이 되어가는 마당에, 신년 특별 새벽기도에 갔다가 교회 주차장의 범퍼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남들은 아마도 지진이 난 줄 알았을 것이다. 급기야 왼편 다리에 큰 부상을 입고 핑크색 예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부축해주고 팔짱 끼어주고 맛난 것을 배달받는 관심세례 기간이 연장되었다.
연이은 고난을 지켜본 이웃들은 액땜한 셈 치라고 묵은해를 날려 버리라고, 음력 새해에는 좋은 일만 있을 거라고 덕담들을 한다. 새해엔 나도 남들을 불쌍히 여기는 입장이 되어 사랑의 빚을 갚게 되길 간절히 소원한다. 진짜 대지진으로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티에도 작은 정성이나마 보태야겠다.
아픔은 성숙을 동반한다니, 우스운 꼴의 내가 성숙하려면 아직도 많이 아파야 할 것 같은 예감에 심란하다.
이정아 / 재미수필문학가협회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