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벌어진 밴쿠버 동계올림픽 숏트랙 남자 1,500m 결선에서 이호석 선수의 무리한 끼어들기로 2위로 들어오던 성시백 선수와 함께 넘어지면서 한국의 금·은·동 싹쓸이가 무산되자 이호석에 대한 네티즌들의 질타가 이어졌다. 감정 섞인 비난들이 쏟아지는 가운데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호석의 입장을 두둔하는 글들이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호석을 비난하기에 앞서 금메달만 기억하는 풍토에 대한 반성이 먼저”라는 것이 요지였다.
이호석에게는 아쉬운 기억이 있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안현수에 아깝게 밀려 은메달에 머물렀던 기억이 그것이다. 은메달을 2개나 땄지만 금메달리스트인 안현수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이런 설움이 그에게 무리한 끼어들기를 시도하게 만든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이와 관련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다. 베이징 올림픽 유도경기에서 한국의 왕기춘 선수와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파이셔 선수가 보여준 모습이 그것이다. 왕기춘은 남자유도 73kg급 결승에서 아제르바이잔 선수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패배에 충격을 받았는지 퇴장할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눈물은 시상대 위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왕기춘의 표정은 며칠 전 벌어진 남자유도 결승전에서 한국의 최민호에게 패한 파이셔가 보여준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파이셔는 자신이 패한 매트 위에서 환한 표정으로 승자인 최민호의 손을 높이 들어줬다. 지고도 환한 웃음을 지을 줄 아는 남자 파이셔는 이후 한국에서 ‘훈남’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패배는 쓰린 법이다. 올림픽 같은 무대에서 정상 일보 직전에 무너진다면 아쉬움은 더 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성숙한 패자라면 자신을 꺾은 상대에게 진심어린 축하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한국 선수들에게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금메달과 다른 색 메달을 지나치게 차별하는 분위기 탓이다.
금메달을 따면 영웅으로 대접받지만 은메달이나 동메달은 별로 거들떠보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는 한국의 스포츠 연금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연금 액수를 보면 금메달은 월 100만원, 은메달은 45만원, 동메달은 30만원이다. 은메달은 금메달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액수가 100만원, 80만원, 60만원은 돼야 좀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선수들이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금메달이 아니면 ‘루저’가 되는 형국이니 무리한 끼어들기를 시도하고 은메달을 딴 후 서러움의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16일 한국의 이상화 선수가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따자 동메달을 딴 중국의 왕 베이싱 선수가 환한 미소와 함께 다가와 이 선수를 꼭 껴안은 채 축하했다. 시상대에서도 시종 웃음을 잃지 않은 미녀 베이싱의 환한 표정은 승자 못지않게 오래 기억될 만한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앞으로도 계속 메달을 수확해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그것이 금메달이면 좋겠지만 은메달, 동메달이어도 상관없다. 한국 선수들에게서도 베이싱의 환한 웃음을 많이 보게 되는 올림픽이 되었으면 한다. 금메달만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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