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일본이 기세를 부리다가 좌절을 당한 후, 서양의 기독교 문명과 중동의 이슬람교 문명은 두각을 내기 위하여 열전을 전개하고 있으나 아세아의 공자교 문명은 산산이 흩어져서 그 존재가 희미하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또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라는 두 작가들의 말들이 나돈 것이 10년이 지났다. 끝없는 논쟁이다. 두 분은 다 한국과 중국 유교의 결점의 역사를 전혀 모르고 일본식 유교 교육에서 살았다. 그런데 김경일씨는 일제의 유교의 좋은 점을 배웠기에 “한권으로 읽는 사서삼경”을 썼다가 나중에는 한국 유교의 결점을 알고 반기를 들고 나서 아무 죄도 없는 공자께 그 책임을 돌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하였다.
최병철씨는 시종 일본 유교의 좋은 장점 밑에 살았기에 아세아 문명의 장점을 들어 공부자를 찬양하여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한 것이다.
공자는, 논어 첫머리에 “배워서 때에 알맞게 실천하면 즐겁지 않겠느냐” 하였다. 여기에 무엇을 배우란 말이겠는가? “자제는 집에 들면 부모에게 효(孝)도를 하고, 집 밖에 나오면 공손하고 삼가하고 믿음이 있으면 모든 대중을 사랑하는 인(仁)자가 될 것이다. 그것을 실천하고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울 것이다”고 하였다.
공자는 여기에 주야로 공부만 하라 하지 않았다. 논어의 편집자들은 이 공자의 한 말씀을 뒤로 돌리고, 그의 제자인 유자가, 공자의 말씀에 앞질러서 “사람됨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겸손하면 윗사람에 거역함이 적다. 윗사람에게 거역함이 없는 이들이 질서를 요란케 하는 일이란 없다. 군자가 근본에 힘쓰면 근본이 서고 거기에 도가 생긴다. 효도하고 겸손함이 인의 근본이 된다(여기에 공자의 인(仁)이 만사의 근본이 아니고 유자의 효가 인의 근본이라고 역설하다)”하여 이 공자의 말씀과 유자의 말에는 교육의 폐단에 대한 답이 없다. 논어를 공부한 사람들은 유자의 눈으로 논어를 읽었기에 공자의 진리는 다 죽었다.
공자가 다시 인자는 자기 몸을 죽여서라도 인을 살려야 한다고 강조한 것에 반대로 효경이란 책에는, “각자의 몸과 털과 피부는 부모에서 받은 것이니 손상치 않음이 효의 시작이고, 입신양명하여 부모의 이름을 영원히 남김이 효의 끝이라”고 하였으니 이 ‘입신양명’이 바로 위에 말한 전락된 교육의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입신양명의 길은 나중에 주야로 공부하여 과거시험에 합격하는데 연결이 되니, 앞에서 말한 교육의 모든 폐단은 여기서 출발하였다고 할 수 있다.
17세기 초에 마태오 리치 신부가 주희의 성리학은 유물주의니 공자 사상의 기초인 논어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그분의 경고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 천주교 선교단이 공자의 인의 사상을 유럽에 전달하였을 때에 그곳 지식인과 학자들이 “공자교는 진정으로 하느님이 사람을 사랑하는 인류박애주의라”고 하였다. 동양에서는 유교, 유교를 부르짖을 뿐 인류박애주의가 무엇인지도 알 생각조차 없었다. 공자의 논어로 돌아갈 공자 재림의 때가 왔다.
토마스 강 박사
유교연구소,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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