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며칠사이로 봄의 기운이 완연해졌다. 아침이면 아직은 쌀쌀한 기운에 겨울자켓을 입고 나오지만 오후가 되면 손에 들고 다니면서 거추장스럽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여기 저기 벚꽃도 눈에 띄고 나무에는 연두빛 여린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지난 가을 그리고 겨울엔 비가 올때마다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잿빛으로 변해 갔는데 지금은 비가 온 후 새잎을 틔우느라 저마다 분주한 것 같다. 한국에서의 봄은 늘 새로 시작한 학년으로 인한 낯섦과 바깥의 햇살과는 다른 실내에서의 냉기로 오슬 오슬 추웠던 기억이 많다. 그리고 스산하게 불어대던 황사의 기억. 그러한 기억때문인지 별로 봄을 좋아하지도 않았고 기다려 본 적도 없는 것 같다. 차라리 코끝이 찡하게 추운 날 ,하루 종일 돌아 다니다 집에 왔을때 훈훈한 집안 공기로 노곤해지던 겨울이 더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이곳 캘리포니아에 와서 어느덧 10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문득 이렇게 계절을 느낄때 이제 나도 캘리포니아에 적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 이곳에 와서 6월의 강렬한 햇살이 피부에 꽂힌다고 느껴졌던 태양에도 적응이 되었고, 가을이면 단풍과 함께 장작타는 냄새가 나야 하는데도 여전히 쨍쨍한 태양을 바라보며 어쩌지 못하겠던 감정도 사라졌다. 처음 2,3년간은 11월이 되면 나파를 다녀오곤 했다. 그곳에서 색이 바랜 포도 나무 잎이라도 보고 와야 가을임이 느껴지고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깨닫기때문이었다. 몇년전 문득 운전 중에 햇살의 기울기로 ‘아 이제 가을이구나’ 하고 느끼면서 내가 이곳에 적응해가고 있음을 실감한 적이 있다. 그런 가을에 비해 캘리포니아에서의 봄은 쉽게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계절이라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봄이면 심지도 않은 꽃들이 마당 어딘가에서 고개를 내밀곤 한다. 보랏빛 프리지아도 작년엔 하나이더니 올해는 두개로 늘어나 있다. 또 어디선가 핑트빛 릴리가 나올 것이다. 해마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매번 장소를 바꿔가며 꽃을 틔우곤 한다. 어쩌면 그렇게 꽃을 기다리는 재미로 봄이 좋아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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