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교실에 두 학년이 이쪽 저쪽으로 나누어 앉아 한 선생님으로 부터 지도를 받는 아주 작은 시골의 초등학교를 5학년 1학기 까지 다녔다. 화단 가꾸는 일은 물론이고 배추며 무우를 키우는 학습장 일이 있고 토끼와 닭을 치는 사육장 돌보는 일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여름철 장마가 할퀴고 간 운동장 보수를 우리가 해야만 했으니 냇가의 자갈을 나르느라 공부는 뒷전이었고 심지어는 낫과 망태를 메고 산으로 들로 다니며 꼴을 베는 것도 학습이라고 해내다 서울로 온 것이다.
가을 학기에 맞추어 돈암 초등학교에 전학수속을 마쳤는데 그 당시에는 중학교를 일류다 이류다 하며 성적순으로 구분 하던 시기라 입학 시험 준비가 치열했던 때였다. 서울의 아이들은 밤 늦은 과외에 체력장까지 겹쳐 잠도 편히 못자던 형편이라 툭하면 공부 시간에 코피를 쏟고 있었다. 학습을 따라가기 힘들었던 나에게 학급문고가 들어 왔다. 꿈 같은 이야기들이 술술 쏟아져 나오는 동화책이었다. 소공자, 소공녀, 비밀의 화원, 돌아 온 레시에서 괴도 루팡에 폭풍의 언덕까지. 처음으로 책을 알게 된 계기였다.
돈을 만지게 되면서 부터 내 책을 사게 되었다. 책을 사면 둘쨋 장 백지의 아래편 오른쪽에 책을 산 날짜와 내 이름 석자를 적어 넣었다. 저자에 대해 읽고 아끼듯이 꼭꼭 씹어 천천히 읽었다. 책이 조금씩 모이자 책을 빌려 주게 되었는데 책이란 한 번 나가면 아무리 이름 석자가 쓰여 있어도 돌아 오지 않는 다는것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었다. 부탁도 해 보고 적어 보기도 하다가 결국엔 생각을 바꾸고 말았다. 책은 아낌없이 다 빌려 주고 나간 책은 다시 다른사람에게 더 많이 돌려 여러사람이 읽도록 하라는 당부까지 얹어 내 보내 버리기로.
책을 내 보낸것에 후회없이 지냈는데 이번에 약간 아쉬운 기분을 맛 보았다. 고 법정 스님이 입적하셨다는 소식에 가슴이 뭉클하며 아쉽고 그리운 마음이 뭉글 뭉글 괴어 올랐다. 그래서 스님의 분신과 같은 말씀들을 다시금 묵상하자 하고 책장을 뒤져보니 달랑 ‘영혼의 모음’ 한 권 만이 내 곁에 있었다. 그래서 빠짐없이 있던 스님의 책이 다 나가 버린 것에 대해 잠시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었다. 맑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스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누군가도 지금 이렇게 스님과 맞대면 하고 있겠거니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비워 버렸다. 그리고 생각을 굳혔다. 앞으로도 책은 계속 내 돌릴 것이라고. 책이 돌고 읽혀질 때 지은이의 숨결도 살아 숨을 고를 것이 아니겠는가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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