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되고 싶다
이 세상 어딘가에 내리는 첫 봄비가.
얼마나 참았던
빗금처럼 쏟아지는 유혹인가
긴 긴 혹한의 끝
깊고 어두운 심연에서 끌어올린 정수를
지붕에, 언덕에, 무겁게 쌓인 잿빛의 눈더미 위에
골고루 뿌려 주리라.
오랜 고통의 갈구로 이뤄진 만남이기에
모든 물상은 제자리에서
순한 눈빛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리.
달콤한 유혹의 정령들
가 닿고 싶은 곳마다 가 닿아
씻기고 어루만지면
모두들 새롭게 빛날 채비를 하리.
기다림에 지친 삶의 모든 갈피마다
어찔어찔한 현기증이 일도록
이 세상 첫 봄비가 되어 흐르고 싶다.
배미순(1947 - )
제주도에서는 이맘때쯤 내리는 비를 ‘고사리 장마’라고 한다. 고사리를 한 뼘씩 쑥쑥 자라게 해주기 때문이다. 고사리뿐이랴. 새로 돋아나는 새싹들이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가는 계절이다. 화자는 봄비가 되고 싶다. 어두움과 혹한, 고통과 기다림의 끝에 서있는 지친 삶의 갈피를 씻고 어루만져주는 봄비. 그것도 첫 봄비라니, 그 손끝이 가 닿는 세상은 어찔어찔 현기증이 날만큼 빛나겠다.
김동찬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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