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활로 현을 그으며 음을 치올리면 우리는 슬픔을 삼킨 듯 아득하다. 그가 손가락으로 현을 퉁기면 우리도 흥이 오른다. 음이 사라진 공간에서 그가 긴 호흡으로 마지막 숨을 고를 땐 우리도 숨을 멈춘다. 경계가 절묘하게 얽히고 때로는 허물어지는 그의 연주에 우리는 한숨짓고, 감동하고 기뻐한다. ‘리처드 용재 오닐(사진)’ 지난 한달 동안 근사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듯한 가슴 설렘을 갖고 내가 기획한 작은 음악회의 주인공이다. 한인타운에서 드물게 초연되는 곡을 들을 수 있고, 또 젊은 연주가의 발전해 가는 모습을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연주회 준비 내내 흐뭇하였다.
특히 그가 연주하는 악기인 비올라는 크기와 연주 자세가 비슷하기 때문인지 보통 사람들은 바이얼린과 잘 구분하지 못하기도 하고 비올라 연주 음반의 판매도 저조한 감이 있는데 이번 기회에 비올라 특유의 깊고 섬세한 감성이 충분히 전달되어 비올라의 독주적 자질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컸다. 비올라는 바이얼린보다 10/7 정도 더 크며 무게도 약간 더 무겁다. 활도 바이얼린보다 약간 굵고 무거워 비올라 특유의 어둡고 깊은 소리를 낸다,
어두운 음색과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밝고 화려한 바이얼린에 비해 오랫동안 독주 악기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주로 보조적 화음진행을 담당하던 비올라는 1779년 모차르트의 콘체르탄테(K.364/320d)에서야 바이얼린과 동등하게 인정받았고, 그 후 베토벤의 현악사중주(Op.18, No.4) 등에서 독주부를 맡기 시작하면서 독주 파트로서 인식이 커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음악가들 중에, 바흐, 슈베르트, 하이든 등 합주할 때 바이얼린보다 비올라를 선호한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비인기 악기였던 비올라를 꾸준한 연주회와 음반 판매를 통해 우리에게 관심을 갖게 한 연주자 중 한 사람이 리처드 용재 오닐이다. 이날 음악회에서 그가 연주한 바흐를 통해 그는 비올라가 독주만으로도 얼마나 풍부하고 다양한 음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는지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또한 이날 초연된 후앙 루오의 신곡 ‘The Songs of the Forgotten’은 음의 아주 작은 한 조각도 새어나가지 못하게 각인시키는 듯한 1악장을 시작으로 침묵의 갈라진 틈을 통해 갑작스럽게 표면으로 부상하는 듯한 비올라와 오보의 협, 불협화음 등을 통해 온갖 소리의 색채를 시험한 마지막 4악장까지 우리들의 신경줄을 팽팽하게 당겼다 풀었다 하면서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감정적 상호교류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보통 우리가 연주회에서 듣게 되는 그의 비올라 음색은 깊고 따뜻하다. 그러나 이날 초연된 실험적 곡을 통해 그가 그저 클래식 음악계의 새로운 트렌드로 머물지 않고 음악을 통한 새로운 시도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적극성을 갖고 노력하는 연주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지막 앙코르곡은, 슬픔이 극복되고 순화되어 밖으로 스며 나오는 듯한 동요 ‘섬집아기’였는데 우리가 변함없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그리움이 빚어낸 듯 애달픈 빛깔에 난 절로 한숨을 내쉬었다. 몰입하되 도취되지 않는 절제, 악기를 자신의 일부처럼 통제하는 그의 연주를 통해 그 자리에 함께한 우리는 감성적 교류와 음악이라는 공집합을 향유할 수 있었다.
침머만, 유리 바쉬메트, 킴 카쉬카쉬안, 노부코 이마이 같은 세계적인 비올리스트들의 탄생으로 비올라는 이제 미래의 악기로 조명 받고 있다. 리처드 용재 오닐, 그는 아직 젊고, 가능성이 무한대로 열려 있는 연주자이며, 이제 그의 차례다. 그가 비올라를 대표할 세계적 연주자로 크게 성장하여 이날 밤의 공연을 함께한 우리의 기억 속에 두고두고 자랑스러운 추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본다.
메이정 / 앤드류샤이어 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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